- 英 트링박물관 새 가죽 도난사건
- 낚시용 깃털미끼 범죄 실화 바탕
- 진실 찾으려 5년간 전 세계 취재
- 깃털 얽힌 인류사 궤적도 보여줘

2009년 6월 23일 영국 트링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새 가죽 299점이 도난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류 컬렉션을 보유한 트링박물관에는 희귀 새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19세기 찰스 다윈과 엘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오지에서 목숨을 걸고 수집한 것도 있었다. 500여 일이 지난 후 잡힌 범인은 열아홉 살의 플루트 연주자인 에드윈 리스트. 열세 살에 컬럼비아 그린 커뮤니티 대학에 입학하고 열여섯 살에 세계 최고 명문이라는 런던 왕립음악원에 입학한 그가 플루트 연주 외에 또 한 가지 천재성을 드러낸 분야는 바로 연어 낚시에 사용되는 미끼인 ‘플라이’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그는 어떻게 박물관에 침입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왜 하필이면 죽은 새들을 훔쳤을까?

희귀종 새들의 깃털을 사용해 만든 연어 플라이. 바늘을 교묘하게 벌레 모양으로 만든 뒤 물에 띄워 물고기를 낚는 데 쓰는 이 플라이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이 있다. 흐름출판 제공

‘깃털 도둑’은 천재 플루트 연주자이자 플라이 타잉(플라이 낚시를 할 때 지렁이처럼 살아있는 생물 미끼 대신, 갖가지 동물이나 새의 깃털을 낚싯바늘에 감아 가짜 날벌레를 만드는 과정)에 빠진 리스트의 실화를 다룬 논픽션 범죄 스토리다. 소설가 김중혁은 이 책에 대해 “깃털에 대한 미시사 논픽션이며, 독특한 탐정이 활약하는 탐정소설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기가 막힌 범죄 스릴러다”고 평했다. 이야기는 흥미롭고 술술 읽혀 책장이 가볍게 넘어간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한 플라이 낚시 가이드에게 이 사건에 대해 처음 전해 들었다. 그는 ‘깃털을 훔친 도둑’이라는 이 특이한 스토리에 빠져들었고, 범죄에 얽힌 진실을 찾기 위해 무려 5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플라이 중독자, 깃털 장수, 맹수 사냥꾼, 전직 형사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은밀한 세계를 파헤치는 대목에선 충격을 넘어선 아찔한 신선함이 있다.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이라는 긴 부제가 달려 있으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저널리즘 요소가 곁들여졌다는 데 있다. 저자의 생생한 취재기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진실에 닿기 위한 위태로운 노력을 체감하도록 돕는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특이한 깃털 도둑 사건을 파헤치는 동시에 깃털에 얽힌 인류사의 궤적을 좇으며 다채로운 지식 여행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책은 1823년 영국에서 태어난 박물학자로 다윈과 함께 종의 기원 창시자로 알려진 엘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탐험 이야기로 시작한다. 월리스는 평생을 바쳐 수집한 생물 표본들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이 표본들은 세계대전 기간에 폭격을 피해 런던 교외의 트링박물관 등으로 옮겼다. 트링박물관을 소유한 부호 월터 로스차일드는 전 세계의 동물과 새들을 모으는 데 열을 올린 수집가이기도 했다. 이 밖에 19세기 깃털 열병을 일으킨 모자 산업, 희귀 깃털로 바늘을 만드는 플라이 타이어의 밀거래 시장 등 깃털에 탐닉한 개인과 사회의 역사를 종횡으로 오간다. 사실이 소설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는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예를 보여준 책이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