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인 작가의 ‘술이부작’ 전시회
- 7월 11일까지 BNK아트갤러리

한복을 격식 있게 차려입은 여인들의 뒷모습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린 정명조 작가의 작품 옆에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의 한복이 설치작품처럼 전시돼 있다. 한글과 한자를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서예적 추상’이라는 독창적 세계를 창조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도 있다. 간결한 선과 추상적 형상을 통해 동양적 절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오수환 작가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BNK아트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작품들. 정명조 작가의 ‘더 패러독스 오브 뷰티’. BNK아트갤러리 제공

BNK아트갤러리(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은행 본점 1층)에서 오는 7월 11일까지 열리는 ‘술이부작(述而不作)’전에서 이전 선대들이 이룩한 가치 위에 자신만의 진지한 시선을 덧붙여 새로운 작품 세계를 펼친 작가 8인의 작품 2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논어의 술이부작은 ‘참된 창작은 옛것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태어난다’는 뜻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이응노(1904~1989) 화백은 오래된 비석에 새겨진 한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이를 바탕으로 ‘문자 추상’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 문자 추상, 1980년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군상 등을 볼 수 있다.

오수환 화백은 ‘그리지 않은 그림’ 같은 특유의 추상회화로 유명하다. 그의 ‘변주(Variation)’ 시리즈는 거칠게 칠한 바탕과 일필휘지로 그려놓은 선의 대비를 통해 동양의 정신성과 서구의 조형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고영훈 작가의 ‘초충도’.

부산 출신 권혁 작가는 전통적인 소재인 도자기를 독특한 색감과 현대적인 느낌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품 ‘109항아리’와 ‘107접시’는 실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닌 작가적 상상으로 생생한 도자기를 표현했다. 사실적이지만 추상의 느낌이 존재한다.

부산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정안용 작가는 연기를 촬영한 사진을 수천 장 중첩해 도자기, 대나무 등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눈에 보이지만 촉각으로 잡히지 않는 이미지는 현실로 이루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꿈과 닮아 있다.

극사실주의 화풍 권위자인 고영훈 작가의 작품 ‘초충도’도 볼 수 있다.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초충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으로 문명을 상징하는 고서 위에 자연을 뜻하는 꽃과 나비를 그려 넣었다.

정명조 작가의 작품 ‘더 패러독스 오브 뷰티(The Paradox of Beauty)’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뒷모습만 보인다. 관객은 얼굴을 볼 수 없는 뒷모습을 통해 상상하는 시간을 갖고, 한복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된다.

	김병주 작가의 ‘광화문’.

설치미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김병주 작가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수화물 찾는 구역에 ‘앰비규어스 월’이라는 대형작품을 설치, 대한민국을 드나드는 전 세계인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으며 더 주목받고 있다. 전시에서 그는 철판을 레이저로 잘라내 속이 들여다보이는 ‘광화문’을 선보인다.

전통 한복을 재해석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알려진 김영진 디자이너의 한복 브랜드 ‘차이킴’의 한복을 입을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주말 및 공휴일 휴관. (051)246-8975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