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 오히려 ‘달러의 위력’ 확인
- 美중심 금융시스템에 꽁꽁 묶인
- 세계 국가경제의 현실 드러내
- ‘금융위기 이후 10년’ 분석한 책

현대 경제사 연구 학자인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가 쓴 ‘붕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을 다룬다. 본문만 850여 쪽에 달할 만큼 방대한 분량을 담은 책에는 한국과 관련한 내용이 아주 많이, 그것도 꼼꼼하게 등장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상자를 든 남자가 파산 신청을 한 미국 뉴욕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본사 건물을 떠나고 있다. 국제신문DB

저자는 제11장 ‘G20’에서 “2008년 가장 위기에 몰린 나라는 한국이다”고 밝혔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부동산대출) 사태로 모기지론 대부업체가 파산한데 이어 2008년 세계 4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극에 달한 금융위기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었다. 당시 한국의 증시와 원화 가치가 폭락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겪었던 한국은 외화를 축적하는 데 집중해 2008년 외환보유고가 2400억 달러에 달했지만 금융위기로 외환보유액은 순식간에 2000억 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했고 이명박 정부는 석유 사용을 줄이는 등 안간힘을 썼다. 한국을 구한 것은 미국과의 300억 달러 통화 스와프(교환) 협정이었다. 필요한 만큼의 달러를 공급받게 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당시 한국이 가진 불량 미국 모기지 증권은 85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금융위기로 고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이 전 세계와 하나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세계 금융 중심지 미국에서 발생한 위기가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한국 스스로의 힘이 아닌 달러의 힘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금융위기는 미국과 영국, 북대서양 연안 에서 시작했지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세계화된 금융시스템이 미국 부동산 경기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또 미국이 통화 스와프와 4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해 위기가 진화됐다고 분석했다. 금융위기의 진앙지는 미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달러의 힘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내용도 등장한다. 20세기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케이스학파의 거시경제학 개념이 21세기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제결제은행 수석 경제학자인 신현송의 이론을 내세워 “세계경제를 국가간 경제 또는 국제경제의 상호작용이라는 ‘섬 모형’의 관점이 아니라 은행간 기업의 대차대조표인 ‘서로 맞물리는 구조’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금융위기가 낳은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영국에서 브렉시트(EU 탈퇴) 결정이 이뤄진 것도, 미국에서 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을 뒤엎고 당선된 것도 금융위기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책은 금융위기가 가져온 전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의 변화를 상세하게 조명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 관해 아주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인 민족주의자로 묘사하면서.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