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 청년 연구로 1947년 탄생
- 치킨보다 싼 가격, 단순 조작법
- 미군 M16보다 성능 인정 받아

- 쿠데타 테러 등 반란·권력의 상징
- 국제뉴스·영화 등에 단골 등장
- 핵무기보다 더 효과적인 파괴력
- 당혹스러운 영향력 등 집중취재

미국 언론인이자 작가 래리 커해너가 쓴 ‘AK47,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잔혹한 도구의 세계사’(이하 ‘AK47’)는 아주 당혹스러운 ‘도구의 세계사’를 펼쳐 보인다. 그 도구는 바로 총이다. 총 전체의 세계사가 아니라 딱 한 종류에 집중한다. AK47이다. 47은 이 총이 소련 군대의 공식 병기로 채택된 해인 1947년을 일컫는다. AK는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vtomat Kalashnikov)의 약자다. 칼라시니코프(1919~2013)는 옛 소련 시절 AK47을 설계한 사람이다.

잔혹한 느낌을 주는 AK47의 실루엣.

72년 전인 1947년 발명된 AK47은 “현재 전 세계에 9000만~1억 정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366쪽 옮긴 이의 글) 세계 어디로든 쉽게 공급됐고, 가는 곳마다 살아남았다. 베트남전쟁에서는 미군의 주력 총기 M16을 사실상 눌렀다. 제3세계에서는 반란과 권력의 상징이 됐다. “AK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중동에서 테러 공격이 벌어졌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은행 강도가 빈발했다. AK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고, 그 독특한 모양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치명적인 소총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13쪽)

AK가 가는 곳마다 살아남은 대가로 사람은 죽어 나갔다. 이 점이 AK47의 세계사를 들을 때 잔혹하고 당혹스러운 대목이다. 그런데도 묻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지? “세계에서 가장 많고 효과적인 공격 무기, 워낙 값이 싸고 단순해서 많은 나라에서 살아 있는 닭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무기(그래서 치킨건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12쪽)가 세상을 실제로 바꿔나간 이야기를 이 책은 충실히 취재해 자세히 들려준다.

래리 커해너가 집요한 취재 끝에 압축한 AK47의 핵심은 이렇게 정리돼 있다. “이 총은 움직이는 부품이 거의 없어서 막히는 법이 없다. 열기와 냉기, 비와 모래에 강하다. 백발백중은 아니지만, 근접전에서는 엄청난 화력(1분당 600발)과 신뢰성 덕분에 M16같이 더 복잡하게 설계된 무기보다 인정받는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병사들은 논에 6개월 넘게 처박혀서 녹이 슨 흙투성이 AK(적군인 북베트남 군대가 쓰던 것이다)라도 끄집어내서 군홧발로 노리쇠를 걷어차면 완벽하게 발사된다고 보고했다.”(13쪽)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AK47을 조준하는 모습(위)과 AK47을 휴대한 아프리카 군사 집단의 소년병. 이데아 제공

그리고 무기 설계자 게오르기 슈파긴의 말을 인용해 요약한다. “복잡한 건 쉽다. 단순한 게 어렵다.”(49쪽)

총에 관심이 없거나 무기를 싫어하는 독자한테라도 이 책이 확실하게 뜻하는 바는 있다. 세계사를 읽는 지평을 넓힌다는 점이다.

‘세계사’라는 표현에 걸맞게 이 책은 세계 곳곳을 조명한다. 당연히 AK47의 ‘글로벌한’ 행로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다루는 기간 또한 제2차 세계대전부터 바로 오늘의 세계에 이르기까지로 길다. 책의 특징을 몇 가지 더 살펴보자면, 세계의 군사적 판도에 관한 거시적 설명이든 총기의 작동 원리를 둘러싼 미시적 사항이든 능숙하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언론인 특유의 역량을 들 수 있겠다.

AK47을 개발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삶을 풍부하게 다뤄 책의 재미를 높이고 풍성한 내용과 함께 ‘문화적 아이콘’이 된 AK47을 조명한 점도 눈길을 끈다.

단순함과 강력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무기인 AK47은 탄생 과정이 특이하다. 상식적인 과정과 예측을 벗어난 곳에서 이 총은 탄생했다. 2차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에 맞서 조국 소련을 지키려 했던 청년 칼라시니코프는 1941년 브랸스크 전투에서 크게 다친다. 기계를 다루는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식으로 기계에 관한 교육을 받지 못한 칼라시니코프는 병상에서 “독일군을 조국에서 몰아낼 수 있는 무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이런저런 스케치를 하고 고치는 일을 되풀이한다.

퇴원하자마자 철도국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설득해 금속 가공소에 일자리를 얻은 그가 계속 연구해 기어코 완성한 뒤 1947년 당국의 공인을 받은 총이 AK47이다. 국가가 엄선한 엘리트들이 좋은 환경을 갖춘 첨단 연구실에서 고차원 토론과 실험을 한 끝에 개발되는 게 정상일 것 같은 신무기의 ‘탄생 설화’ 치고는 소박하고 뜻밖이다. 그렇게 탄생한 AK47은 세계사 물줄기를 바꿔버렸다.

지금껏 ‘AK47’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이라도 이 총의 사진을 보는 순간 단박에 알아볼 것이다. 영화나 국제뉴스에서 나오는 반란군, 게릴라, 반군, 테러리스트, 강도뿐 아니라 혁명군, 정부군, 시민군까지 거의 AK47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핵무기야말로 가장 영향력이 큰 무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를 쓰면 ‘모두’가 파멸할 위험이 너무나 커서 실전에서는 거의 안 쓰인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수많은 무력 분쟁의 현장에 들어가 실질적으로 그 분쟁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것이 AK47이라는 총이었다. 그러니 어찌 핵무기만 세계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것인가? 이것이 AK47이 전하는 당혹스러운 세계사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이유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