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불위 황금 제일주의 세상
- 위조화폐 제작·유통시켜 ‘저항’
- 뒤쫓는 수사 팀과의 한판 승부
- 돈의 본질에 대한 질문 던져

“철학이라! 돈을 다루는 철학은 하나야. 돈과 정정당당하게 승부한다. 돈은 실력이 대단한 놈이니까. 수천 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이 뛰어나. 우리는 돈과 싸워 이기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야. 돈은 교활한 놈이니까 긴장을 늦추면 안 돼. 하지만 돈은 자신과 겨루는 진정한 승부사를 존경해. 그래서 승부사에게는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76쪽)

소설가 정광모의 두 번째 장편소설 ‘마지막 감식’에서 중요한 축을 맡은 인물인 MT삼조회사 권호 대표는 칼로 자른 고기를 씹어 넘기며 이렇게 일갈한다. MT삼조회사는 수천억 원에 이르는 펀드를 여러 개 굴리는 사모펀드이며 권호 대표는 이 회사의 ‘황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한남수는 이렇듯 ‘돈의 화신’과도 같은 권호 대표의 비서다. 한남수는 권호 대표의 돈에 관한 철학과 행동을 외경하면서 충성을 다한다. 그런데 한남수의 마음에 ‘틈’이 생긴다. 권호 대표의 불통 행보에 반발심을 느낀다. 그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노인 허태곤은 이렇게 충고한다. “돈의 왕국에 소통 따위는 필요 없어. 돈은 스스로 사람을 소통시키니까 말이야. 자신을 쫓아오도록 모두를 줄 세우기 좋아하고. 자넨 걸인에게 적선을 자주 했지. 자비로운 마음이야. 그런데 돈은 그런 마음을 좋아하지 않아. 돈은 자신이 팽창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자선을 허락해.”(119쪽)

정광모 소설가는 ‘마지막 감식’에서 ‘돈’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씨름한다. 이건 작가에게 아주 큰 싸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근본적인 존재’이며 막강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정광모 소설가는 이 일을 어찌할 셈인가? 그는 권호 대표로 상징되는 무소불위의 황금 중심 세상에 틈을 내는, 게릴라 방식을 일단 선보인다. 게릴라 투쟁은 위험한 싸움 방식이니 아무나 감당할 수 없다. 사연을 간직한 적임자가 필요하다. 바로 허태곤 노인이다. 허태곤 노인은 잘나가는 금융맨이었으나 돈 때문에 참혹한 일을 당한 사연이 있다. 그가 택한 복수의 무기는 위조지폐다. 하지만 방식이 뜻밖이다. 1만 원짜리 위폐를 소량 찍어 소량 유통한 뒤, 여기서 생긴 이득보다 아홉 배 많은 돈을 보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한다. 허태곤은 말한다. “그래서 더욱더 그 세상에 균열을 내고 싶은 거야. 내 방식으로. 내 나름의 돈키호테식 방법으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벌써 미쳤을 거야. 이렇게 하다 보면 어디선가 가느다란 빛이 들어오지 않을까. 기부와 증여로 돌아가는 세상 말이야.”(125쪽)

주인공 한남수는 허태곤 노인을 돕다 어느 순간 지역화폐를 널리 쓰는 반두마을을 알게 되면서 ‘저항’의 방식을 더욱 확장하고 자기 삶도 바꾸어간다. 여기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양원진 등 특별수사대원들의 추적이 붙는다. 책장을 덮고 나면, 과연 돈이란 어떤 존재인지 한 발짝 떨어져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