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 싱가포르 대표 감독 ‘쿠’의 데뷔작
- 헝가리 거장 피테르 바쵸의 ‘증인’
- 1960년대 美에 충격던진 ‘졸업’ 등
- 영화예술 지평 넓힌 작품들 준비

부산 클래식은 영화사에 기록될 거장들의 주옥같은 걸작의 복원작 그리고 미처 소개되지 못한 고전 문제작을 선정하여, 영화예술의 지평을 넓힌 영화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문이다.


★알라딘(싱 흐왓 탄/인도네시아)

	알라딘

‘알라딘’ 하면 디즈니의 ‘알라딘’을 떠올리겠지만 ‘아라비안 나이트’에 들어 있는 이 이야기는 일찌감치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인구의 다수가 이슬람교도인 인도네시아에서 페르시아에서 나온 이야기를 받아들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50년대 인도네시아 영화가 놀라운 수준의 기술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알라딘’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재연한 작품이다. 램프의 요정 지니가 알라딘의 소원을 들어주어 알라딘과 공주가 결혼하게 만들고 사악한 마법사가 그들의 행복을 훼방 놓는다.

★졸업(마이크 니콜스/미국)

1960년대 말 미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대표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에는 믿기 어렵겠지만 1967년 개봉 당시 ‘졸업’은 상당히 대담한 영화로, 심지어 몹시 괘씸한 영화로까지 여겨졌다.

갑자기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대학 졸업생과 그와 성관계를 맺기로 한 주부 그리고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가 바로 약탈자와도 같은 자기 어머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착하고 순진한 아가씨 사이 삼각관계가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1967년은 섹스 혁명이 막 시작되고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는 못했던 때였다. 그때까지 할리우드 주류 영화가 중산층의 성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바라본 적도 없었다.

한편 ‘졸업’은 우리에게 익숙한 연기파 배우 더스틴 호프만을 스타로 만든 영화이자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와 결혼식장을 뛰쳐나가는 엔딩 장면이 유명하다.

★면로(에릭 쿠/싱가포르)

	면로

오늘날 싱가포르의 대표 감독으로 손꼽히는 에릭 쿠의 데뷔작. 1996년 제1회 BIFF 뉴커런츠 부문에 상영됐던 영화이기도 하다.

‘면로’의 영어 제목 ‘미폭맨’은 시장에서 파는 납작한 국수(미폭)에서 따온 이름이다. 자기 인생에 별로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직하게 사는 남자는 자기 가게에 자주 들르는 창녀를 사랑하는데,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도로에 쓰러져 있는 이 여자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간호한다. 창녀가 속해 있는 깡패조직은 사라진 창녀를 찾아 나서고, 상처 입은 채 누워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숨겨주는 미폭맨은 자기 가게에 들른 깡패들과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는 미폭맨의 헌신적인 보호와 간호에도 결국 죽는다. 시체가 된 여자 앞에서도 남자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붉은 나무딸기(바실리 슈크신/러시아)

	붉은 나무딸기

구 소련의 대배우이자 유망한 감독이었던 바실리 슈크신의 유작이다. 어떤 이유로 5년간 징역 생활을 했던 예고르는 출옥하자마자 감옥에서 펜팔로 만난 여성 루바를 만나러 간다. 우여곡절 끝에 루바를 찾은 예고르는 그녀가 사는 마을에서 휴식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그러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주민들은 갑자기 나타난 예고르를 불편해하며 그의 과거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바실리 슈크신과 그의 아내가 함께 출연했으며, 러시아의 전원을 즐겨 그렸던 감독의 특징이 잘 표현됐다.

★증인(피테르 바쵸/헝가리)

	증인

헝가리의 거장 피테르 바쵸 감독은 한국 관객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헝가리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69년 작인 ‘증인’은 제작 당시 상영 금지가 된 뒤 10여 년간 관객과 만날 수 없었다.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스트들과 싸우다 부상을 당한 적 있는 충실한 헝가리 국민이다. 애국심이 모자란 인물이 아니지만 정부의 배급 물량이 줄자 집에서 기르던 돼지를 도축해 지하실에 저장해 둔다. 먹을 것이 부족한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지만 경찰은 그의 집을 수색하고 그를 체포한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새로운 직업을 얻지만 번번이 정부 고위층의 심기를 건드린다.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문제가 되고 마침내 양심과 생존 사이에 하나만 선택해야 할 상황에 내몰린다. 사회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유쾌하고도 씁쓸한 풍자인 ‘증인’은 시간을 뛰어넘어 위대한 정치 코미디의 고전이 된 작품이다.

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