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항아리·벽화 등 50여 점
- 내달 3일까지 광안갤러리서

“흙과 불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흙은 사랑이며, 불은 열정입니다. 흙과 불은 곧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이종능 작가의 ‘내 어릴적에’

‘토흔(土痕)’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가로 떠오른 지산 이종능 작가의 흙에 대한 철학이다. 그는 다음 달 3일까지 수영구 광안동 광안갤러리에서 22번째 개인전 ‘빛은 동방에서-도작(陶作) 35년전’을 갖는다. 그가 부산을 찾은 건 2002년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도예 초대전’ 이후 두 번째다. 이번 전시에서 2007년 9월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특별전에 선보여 극찬을 받았던 ‘백색의 달항아리’ 계보를 잇는 달항아리 연작과 각종 다기, 토기, 벽화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가마에서 천변만화를 일으키는 진사, 검은 바탕에 드리워진 나뭇잎 무늬, 물방울 다기 등 이 작가만의 독특한 흙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는 대학 4학년 때부터 한국 도자기의 메카인 경기도 이천에서 본격적인 흙 수업을 시작했다. 1990년부터 일본, 대만, 태국 등 남방문화권 도자기 흐름을 연구했으며, 이후에도 3년간 중국, 몽골, 실크로드의 명요, 명차, 산지를 찾아 북방문화권의 흐름도 추적했다. 그 결과 흙의 흔적이 있는 ‘토흔’이라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완성하게 된다. 토흔은 유약에 의존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흙이 가진 색과 느낌을 간직하는 도예법이다. 그는 “모든 흙은 고열(1250도 이상)에서 원래의 색을 잃어버리고 유약의 색에 의존하지만, 토흔은 태초의 그 색을 불 속에서 그대로 간직하면서 우리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도예 세계다”고 말했다. 토흔은 강렬하면서 동시에 비대칭의 소박미를 추구한다. “우리 도자기는 부족함이 만들어낸 균형 조화의 절제미, 단순 소박미 그리고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아름다운 선만 살려내려는 꾸밈 없는 자세에서 우러나온 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친근한 아름다움이 있지요.”

이 작가는 국내는 물론 뉴욕 워싱턴 런던 도쿄 오사카 등 세계 각지에서 도예전을 열며 독창적인 한국의 미를 알리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 국립민속박물관, 중국 항저우 국립다엽박물관, 일본 오사카 역사박물관 등에 일부 작품이 소장돼 전시 중이다. 그는 “도예가란 나의 직업이 아니라 내 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길동무”라며 “세계인이 주목하는 한국의 도자 세계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