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8년~1636년 ‘틈’에 주목
- 소년병 삶 다룬 소설 중심으로
- 명·청·왜 얽힌 역사 해설 담아
- 연이어 전쟁 맞았던 이유 분석

역사적 사건이 끝난 이후 다음 역사적 사건으로 전환되기까지의 시기, ‘틈’은 종결된 이전 사건에 대한 결과와 전개될 이후의 사건에 대한 원인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한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틈의 역사로는 정유재란이 끝나고 병자호란이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38년간의 세월을 꼽을 수 있다. 그 짧은 틈은 한반도에서 동아시아 패권이 뒤바뀌는 ‘난(亂)’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가려졌지만, 한국사의 이후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북관유적도첩(北關遺蹟圖帖)’ 속의 ‘야전부시’. 신숙주가 함경도 도제찰사 시절 여진족을 물리친 역사를 담았다. 추수밭 제공

‘왜란과 호란 사이 38년’은 이러한 ‘틈의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조선은 국제적인 환란을 경험한 이후 내외적으로 국가를 재건해야 했다. 임진왜란(1592~1598)이라는 위기가 끝난 이후 병자호란(1636)이라는 위기의 반복 이전까지 태풍의 눈과 같았던 잠깐의 시기에 조선은 무슨 선택을 했으며, 어떻게 시간을 보냈고, 궁극적으로는 비극이 왜 반복될 수밖에 없었는지, 잠잠한 듯 조선의 사회상이 급변한 시기를 재조명한다.

책은 왜란에서 호란까지 38년 동안을 10개의 장으로 나눈다. 각 장은 두 축으로 전개되는데 조선의 소년병 부대인 ‘아동대’ 출신인 가상의 인물 홍한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그 소설을 바탕으로 풀어쓴 역사 해설이다. 홍한수는 왜란 전인 1583년에 태어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에서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조선과 명, 청, 왜와 얽힌다. 역사 해설 파트에서는 홍한수를 비롯한 아동대 출신의 삶을 배경으로 임진왜란 직전부터 병자호란 직후까지의 한국사를 촘촘하게 훑는다. 그럼으로써 광해군의 외교정책이 결국 실패한 원인과 인조가 국제정세를 똑똑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부상하는 제국인 청보다 명에 집착했던 이유, 그리고 조선이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을 연이어 맞았던 사유에 대해 파헤친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왜란 바로 다음에 호란을 다시 맞아야 했을까. 저자는 병자호란이 필연적인 비극이자 동시에 대비하고 또 피할 수도 있었던 전쟁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 기간 조선은 왜를 상대하느라 여진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누르하치가 굴기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또 전쟁 이후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군을 정비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조정의 위정자들은 정유재란과 인조반정, 정묘호란을 거칠 때까지 미래를 바꿀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책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취하게 되는 행동 중 최악은 결단을 미루고 내리지 않는 것, 역사는 반추할 줄 모르는 이에게 항상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복수해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작금의 국내 정치 상황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조선전쟁 생중계’, ‘조선의 명탐정들’, ‘미스 손탁’ 등 다양한 역사 교양서와 역사 추리소설 20여 권을 썼고, 간결하고 쉬운 문체를 자랑한다. 분석은 치밀하고 깊지만, 이야기는 무겁지 않고 재밌게 읽힌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