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드니 사물 보는 관점 중성화
- 예술, 낯설어야지 익숙하면 안 돼”
- 거칠지만 묵직한 유화 작품 공개

- ‘Stopping for a while at 50’展
- 가나아트부산 29일까지 열려

“중년은 밖으로부터의 슬픔이 빛이 되어 안을 비추고 그것은 다시 삶과 생명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해바라기는 슬프고 무겁지만, 다시 고개를 들기 위한 찰나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빳빳이 들어 저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해바라기가 서 있는 자리, 해바라기의 대지를 바라본다. 기력이 약해 고개를 떨구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변화일 뿐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뜨거운 태양을 바라볼 것이다.”

김남표 작가가 부산 수영구 가나아트부산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작품 ‘Crawl #9’ 앞에서 작업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김남표 작가가 부산 수영구 가나아트부산에서 개인전 ‘Stopping for a while at 50’을 열었다. 화폭에는 작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얼룩말이 사라졌다. 인조모피도 찾아볼 수 없다. 태양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타들어 갈 것 같은 해바라기가 가득했다. 두꺼운 물감과 광목천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그동안 자동차·신발·책·집 등 인공물과 사자·얼룩말 등 자연물 조합한 초현실적인 장면을 화폭에 담아왔다.

중년을 맞은 작가가 화풍을 격변시켰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이전에 알았던 김남표 작품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제나 재료가 변했다. 다 죽어가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는 부엉이에게서 어렴풋하게 작가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존의 작품을 상상했다면 생경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겠다.

작가는 그동안의 스토리텔링에 묶여 그리고 싶은 것을 못 그리는 현실을 거부했다. “‘내 느낌과 재료가 맞는가’에 집중했다. 이전 작업 때문에 알려졌지만 부담이 있고, 그 부담감 때문에 그리고 싶은 것을 못 다루는 사실은 나한텐 안 맞다. 예술은 낯선 느낌이 중요한데 반복이 되면 익숙해지고 지루해진다. 예술가는 탈피해야 한다. 불안정해 보이더라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시장은 안정감을 요구하지만 그에 맞추다 보면 예술은 시들어버린다.”

작가는 ‘중성화’를 변화의 이유라고 했다. “전에 해왔던 작업이 밝았다면 유화는 무거운 작업이다. 나이가 들면서 ‘든다’는 의미를 생각해봤다. ‘든다’는 것은 외부의 빛이 내부에 들어와 어두운 자신의 공간을 비춰 이전부터 있었지만 보지 못하였던 것을 보게 하는 새로운 기회다. 남성호르몬이 줄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졌다. 사물의 사물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고집 센 남성적인 속성보다는 바라보고 배려하는 중성적인 속성이 필요하다.”

작가는 중성화돼 가는 지금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시기라고 봤다. 그는 원시림 같은 자연 속에서 느낀 생생한 자연을 화폭에 옮겼다. 그림에는 거친 질감이 근육처럼 꿈틀거리는 듯 생명력이 느껴졌다. 사물을 보는 관점은 다소 중성화 됐을지 몰라도 그림이 주는 느낌은 이전 작업보다 더 남성적이고 거침없었다. 작가가 20년 전에 첫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피가 낭자한 듯한 작품 ‘절규1, 2’ 등을 떠올리게 했다.

“작업 후 결과물을 보자 예전에 그렸던 내 그림이 보였다. 다만 좀 더 순화돼서 나타났다. 첫 개인전을 열 당시에는 세상에 대한 불만도 많았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야말로 혈기 왕성한 시기였다. 중년이 됐다고 욕심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부엉이는 부와 지혜의 상징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다.”

1970년생인 작가는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00~2006년 ‘집단막’을 결성해 동료작가들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 세종대 예술대학 회화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051)744-2020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