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간 작품값 최고 상승 53위
- 연필묘법서 출발 색채묘법 지나
- 직선작업 중단 새 작업 선보여

미국의 미술 전문 매체 아트넷은 최근 박서보(사진) 작가를 ‘지난 10년간 작품값이 가장 많이 상승한 작가 100명’ 중 53위로 선정했다. 2017년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가의 1979년도 작품 흰색 묘법 연작 ‘묘법 NO. 10-79-83’은 역대 최고가인 14억7000만 원에 낙찰됐다. 그의 근작도 한 점에 수억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1999년 경매에서 600만 원짜리 한 점이 팔린 것과 비교하면 여든이 넘어서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부산 조현화랑 달맞이점과 해운대점에서 각각 구작과 근작을 다음 달 16일까지 전시 중인 그를 만났다.

	박서보 작가의 2001년 작품 ‘묘법 No. 010521’. 조현화랑 제공

■600만 원 그림이 14억 원으로

“나만큼 큰 그림을 많이 그린 작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1981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그림이 잘 안 팔렸다. 어차피 안 팔리는 거 크게라도 만들어 보려고 대작 위주로 작업을 했는데 이렇게 인정받을지 몰랐다. 큰 그림을 그릴수록 재료비가 많이 든다. 캔버스와 물감값을 벌려고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를 했다.”

작가의 묘법 시리즈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아들의 낙서에서 시작된 ‘연필 묘법’으로 출발했고, 1980년대부터는 종이 대신 한지를 이용해 대형 화면에 선을 반복적으로 그려냈다. 40년 가까이 한지에 천착해왔다. “서양 종이에 색을 입히면 색채가 종이 위에서 발산한다. 한지는 그 색을 품어서 종이와 합일한다. 연필로 서양종이에 색칠하면 검다는 생각밖에 안 들지만, 한지에는 거무스름하게 나타난다. 자연관의 차이로 보인다. 서양은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고 서로 분리하지만, 동양은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본다. 내가 자연인 셈이다. 그런 사고 밑에서 나온 한지는 색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연 표현한 색으로 치유

	박서보 작가

그는 2000년대부터는 밝고 화려한 색채들을 쓰기 시작했다. 물에 적신 한지 세 겹을 캔버스에 붙인 후 막대기로 수만 번씩 밀어서 고랑과도 같은 입체적 화면을 만들고 색을 입힌다. 평론가들은 이 시기를 ‘후기 묘법’ 혹은 ‘색채 묘법’으로 정의한다. “나는 20세기의 산물이다. 21세기라는 디지털시대에 살 자신이 없었다. 지구가 스트레스 병동이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고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림이 사람을 치유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색을 쓰기 시작했다. 단풍·개나리·벚꽃·하늘·공기·쇠똥색 등 자연과 가장 가까운 색을 쓰려고 했다. 물통에 드릴로 색을 섞어 수백 차례 종이에 찍어보면서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았다.”

작가는 단색화의 거장 혹은 선구자로 불리기도 한다. 이 용어는 ‘흑과 백’의 대비를 뜻하는 서양의 ‘모노크롬’이란 단어에서 나왔다. “모노크롬은 까맣거나 하얗거나 둘 중 하나다. 내 그림을 단색화라고 부르지만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 평론가가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모두 그렇게 부르니 바꿀 도리는 없다.”

■아흔 앞두고 새 작업

89세로 아흔을 앞두고 있지만 작가는 최근 직선 작업을 중단하고 수성안료 대신 연필을 사용하는 등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작가가 자신을 모방하기 시작하고 타락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념만 가지고 장난치면서 변화를 시도하면 추락한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작업해서도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찌꺼기’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리는 것 외에는 재주가 없다. 나에게 그리는 행위는 수신하는 과정의 도구 혹은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수없이 그리고 반복하는 사이에 내가 비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림은 그 과정에서 남은 찌꺼기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