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에 잠식된 곳에서 살아가는
- 황량하고 소외된 사람들 담아내
- 해운대 ‘BMW 포토스페이스’서

공항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설렘과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주는 복합적 공간이다. 스타들의 공항 패션을 보려고 수많은 팬과 파파라치들이 진을 치기도 하고, 은퇴 선언과 함께 해외로 나갔던 정치인들이 도착하자마자 이곳에서 큰절을 하며 정계 복귀를 알리기도 한다. 이처럼 공항은 관심이 집중되지만, 공항 근처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김신욱 작가가 그의 작품 ‘Terminal 5’ 앞에서 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공항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담은 김신욱 작가의 사진전 ‘주변에서’가 부산 해운대구 BMW 포토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왜 공항 주변이었을까? “작가 생활과 생계유지를 위해 택시 운전을 했다. 2010년부터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을 2500번 정도 이상 오간 것 같다. 운전을 한 지 1, 2년이 지나자 공항과 그 주변만이 갖고 있는 낯선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장소성을 드러내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김신욱의 ‘funfair’(위쪽 사진)와 ‘611-613 Bath Road’.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전시장에는 공항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집, 그리고 비행기를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담은 사진이 걸렸다. 공항 주변 농경지와 거주지는 공항으로 인해 절단되고 조각나 긴장감과 불확실성을 안고 확장된 공간과 어색하게 공존했다. 마치 비무장 지대처럼 평소에는 출입을 금지하다가 일정 시기에는 주민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한시적인 이벤트와 축제가 열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공항과 그 주변의 경계는 뚜렷하면서도 모호하고, 직접적이면서도 애매하다. 공항의 활주로는 높은 담으로 포위돼 있지만 공항 바깥을 우회하는 길과 맞닿아 있고, 그 길가에는 공항이 소유한 거대한 장기 주차장과 렌터카 회사·호텔 등 공항을 위해 존재하는 시설들이 도미노처럼 연결되며 펼쳐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공항과 그 관계시설인지 정확히 정의하기 모호할 만큼 공항은 주변부를 끊임없이 잠식해 나간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갈등이 공항 주변에서는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새로운 활주로 확장을 두고 기존 거주민들의 대립하고 시위가 벌어지며 이와 관련된 환경 문제들이 대두된다. 여러 형태의 이주와 노동, 다양한 문화와 역사, 종교와 인종, 환경과 개발 문제 등에 관련한 다양한 모습이 공항과 그들 사이에 압축돼 나타난다.”

공항 주변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고, 그곳을 수없이 오가는 이들에게는 기억할 가치가 없는 곳이었다. “비행기가 내려오는 길목에 있어 소음이 심한 집에는 일자리를 찾아온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소외된 사람들로 대다수는 유색인종이다. 영국이었지만 영국인은 드물었다. 승무원들에게 ‘공항과 공항 주변에 대해 어떻게 생각느냐’고 묻자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관심 없다’ ‘위험할 것 같아 나가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 호텔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영국 런던 히드로공항 외에도 인천국제공항이나 김포국제공항 등 국내 공항 주변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설명을 듣지 않고는 찾아내기 힘들었다. 공항 주변 풍경은 어디나 다를 바 없었던 듯하다.

작가는 2014년 영국 왕립 예술학교 사진학 석사를 졸업했고, 2017년 제10회 KT&G 한국사진가 지원 프로그램(SKOPF)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그의 작품은 일본 기요사토 사진미술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오리엘컬리지, KT&G 상상마당 등에 소장됐다. 전시는 오는 4월 11일까지.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