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 작가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호적을 정정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누군가의 반려자가 될 거란 생각까진 하지 못했다. 박조건형 드로잉 작가와 만나 사랑하고, 함께 사는 지금은 그래서 ‘기적’과 같다. 김 작가는 남편 박조 작가를 통해 비로소 삶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발버둥을 치지 않아도 사랑을 얻고 축복을 받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삶이 나를 얼마나 눈부시고 빛나게 만드는지 그제야 깨우쳤다.”(200쪽)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은 트랜스젠더인 김 작가와 30년 가까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박조 작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외로웠던 개인이 서로 만나 사랑을 하고, 이웃과 연대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책은 ‘나는 짝지 편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위태로움을 끌어안는다’ ‘비로소 여기 이곳에’ 등 총 3부로 구성했는데, 부부가 번갈아 가며 각자의 생각을 풀어낸 형식이 독특하다.

성전환과 우울증이라는 가볍지 않은 이슈를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에세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오히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공존하는 삶의 태도가 따뜻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네기보다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김 작가의 모습이 그렇다. “나는 그의 방 쪽으로 돌아눕는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용히 그의 몸부림 소리를 듣는다. 그의 몸부림이 새근새근 잠에 빠진 숨소리로 바뀔 때까지 귀를 기울인다. 그는 그의 방에서, 나는 나의 방에서, 우린 그렇게 각자의 위태로움을 있는 힘을 다해 끌어안는다.”(138쪽)

부부는 사랑이 가져온 변화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박조 작가는 김 작가의 응원에 힘입어 포기했던 그림을 다시 시작했으며, 현재는 드로잉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소수자였던 김 작가에게는 이전에 없던 ‘보통의’ 이웃이 생겼다. 김 작가는 남편의 지인이 건넨 ‘형수님’이라는 호칭에 낯설지만 뭉클한 감정을 느끼고, 사람들과 편안하게 교류하며 처음으로 동네주민이 됐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두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이처럼 에세이는 인간의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사랑을 그리며, 독자들에게 ‘매 순간 감사하고 매 순간 사랑하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민경진 기자 jnmin@ko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