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 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부산시립무용단 제82회 정기공연 ‘소생_Regen’(안무 이정윤) 한 장면. 부산시립무용단 제공

　춤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은 설레고도 무섭다. 나의 눈앞에서 약동했던 생명력에 관해 쓰는 일이므로 설레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는 그 약동이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무섭다. 나는 보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다수는 보지 못한 어떤 것에 관해 나는 쓰고자 한다.

　이 글은 일종의 리뷰다. 나는 용어를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평론가가 쓰면 평론, 비평가가 쓰면 비평이다. 리뷰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영화 장르가 욱일승천할 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평론가는 영화평론을 썼고, 비평가는 영화비평을 썼는데, 영화리뷰는 누구나 썼다. 철학자, 시인, 소설가, 정신분석학자, 정신과의사, 치과의사, 음악가, 영문학자, 학생, 기자…. 많은 매체에 많은 사람이 영화리뷰를 썼다. 차별도 없었고 ‘근본’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 결과는? 영화 장르의 엄청난 발전과 도약이었다. 리뷰를 ‘누구나’ 쓰는 일이 중요함을 여기서 알 수 있다.

　나는 춤 담당 기자로서 부산 춤 예술 현장을 10여 년 취재한 경험이 있고, 춤 월간지에 몇 해에 걸쳐 부산 춤 예술계 공연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리뷰는 기자 시각, 언론 관점에서 본 리뷰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다.



　2020년 12월 4일 오후 8시와 5일 오후 5시 부산시립무용단 제82회 정기공연 및 예술감독(이정윤) 취임공연 ‘소생_Regen’이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지키며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랐다.

　이 공연 직후부터 부산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 그 탓에 ‘소생_Regen’ 뒤에 잡혀있던 부산문화회관 공연은 줄줄이 취소·연기됐다. ‘소생’이라는 제목의 이 공연은 코로나19 대공세 속에서 취소되지 않고 절묘하게 살아남았다.

　이 글에서는 작품 내부의 세세한 미적 요인을 따지기에 앞서 먼저 좀 더 큰 틀에서 들여다볼 사항을 들여다보고, 방향성을 살피고자 한다. 필자는 4일과 5일 공연을 모두 보았다. 이번 공연은 부산시립무용단의 제82회 정기공연이자 이정윤 예술감독의 취임공연이다. 이용관 부산문화회관 대표이사가 2019년 1월 부산시립예술단 각 단체 예술감독을 뽑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을 기점으로 하면 2년에 걸친 긴 과정이 비로소 마무리됐다. 이정윤(44)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은 부산에서 고교까지 나온 ‘부산 남자’이자 국립무용단의 간판, 한국 춤계의 스타로 강한 인상과 족적을 남겼다. 직전까지 그는 타이베이국립예술대학에서 춤 예술을 가르쳤다.

　이정윤 예술감독이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에 응모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남풍-South Breeze’를 안무해 선보였다. ‘남풍-South Breeze’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줬다. 그 작품의 여러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남풍-South Breeze’은 작품 속 여러 요소와 무용단원들 사이의 앙상블이 좋았다. 그래서 휘몰아칠 때 유감없이 힘이 실렸고, 디테일을 표현할 때 섬세한 호흡감까지 잡아냈다.

　이번 작품 ‘소생_Regen’을 이어서 보면서 이정윤 예술감독 특유의 안무 코드가 몇 가지 있다고 나는 느꼈다. 그런 코드가 부산의 관객과 잘 맞아떨어지겠다는 인상도 받았다. 전체 흐름이나 리듬, 호흡 등의 면에서 이정윤 특유의 것이 있었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꽤 여러 장면에서 ‘소생_Regen’은 내가 객석에서 예상한 것보다 조금 빨랐다. 반 발짝 빠른 흐름을 보였다고 할까? 장면과 장면 사이 흐름 또는 장면 전환을 빠르게 가져가는 듯했을 뿐 아니라 기승전결 호흡에서도 기와 승, 승과 전 사이를 전통 한국 춤 군무 공식을 어느 정도 깨고 약간 빨리 가져갔다고 나는 느꼈다. 이를 잘 조율하지 못하면 흐름이 깨질 수 있고, 잘 수행하면 관객이 눈을 떼기 힘들 것이었다.

　이를 좀 더 확대해서 말하면, 이정윤 예술감독은 한국 춤 기성 문법에 대해 일종의 ‘반항심’(?)이 있고 이를 세밀하게 조절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나는 느꼈다. 이 공연이 끝난 뒤 나의 이런 의견을 춤 전문가분들한테 조금 밝혔는데, 의견이 다른 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언뜻 보면 쉽지만, 실제로 하려면 어려운 이런 시도를 더 들여다봐야 이정윤 예술감독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2월 4, 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부산시립무용단 제82회 정기공연 ‘소생_Regen’(안무 이정윤) 한 장면. 부산시립무용단 제공

　작품의 기획의도 또는 춤 작품의 안무의도에 관해서도 내 의견을 말해두고 싶다.

　춤 작품을 이야기할 때 안무의도 또는 기획의도를 종종 간과한다고 나는 느낀다. 기획의도·안무의도란 왜 이때 이 작품을 만들려고 마음먹었는가 하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의도가 지금 이 시대 이곳 상황을 두루 살폈을 때 의미가 있고 알맞은지 살피고, 그 의도가 작품 속에서 잘 구현됐는지, 구현하는 과정은 새롭고 창의성이 있고 인상 깊은지, 작품의 세부는 어떠했는지 보면 한 작품에 관한 감을 대체로 잡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생 Regen’은 일종의 비나리이다. 코로나19가 우리 시대 우리 사회를 덮쳐버린 이 시점은 비나리가 관객에게서 관심을 끌 만하고 사회에 의미를 던질 만하다. 비나리는 무속 현장을 연상시킨다. 정치한 이야기 구조나 구성상의 디테일에 관한 기대는 좀 덜하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 앞에서 맥을 짚고 관객과 호흡하는 힘을 좀 더 눈여겨보려 했고, 이야기나 구성의 세심함에는 관심을 좀 덜 기울였다. 강렬하게 비나리가 가슴에 도장 하나 콱 찍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할까?

　그래서 첫 장면에서 춤꾼이 무대를 가로로 길게, 반복해 달리는 장면에 관해 어떤 분은 너무 익숙한 장면이라며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생명을 구하려고 어디론가 맹렬히 뛰어가는 모습으로 보여 나쁘지 않았다. 영화 ‘기생충’의 음악을 맡는 등 요즘 각광받는 음악가 정재일이 작곡한 음악이 이틀에 걸쳐 너무 컸다는 지적도 꽤 있었다. 나는 이에 관해서도 무속 현장의 강렬한 비나리 음악을 떠올렸기에 별로 불만이 없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아쉽고 만족스럽지 못한 장면과 순간이 있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군무가 좀 더 강하고 단호하게 칼처럼 휘몰아쳤으면 드라마틱한 느낌이 더 선명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절정에 해당한 3장의 군무 장면에서 ‘백립이’가 강렬한 느낌을 주며 소생하면 이 작품도 소생하는 것이고 그게 안 되면 임팩트는 줄어들 것이었는데, 이에 관해서는 좀 더 생각할 여지가 있다. 다만 ‘남풍-South Breeze’에서 보였던 ‘심장춤’의 드라마틱함과 강렬함에는 못 미치지 않았나 한다. 코로나19로 집단적 모임 등이 제약받는 상황에서 단원들의 고충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객석에서 작품을 보면서, 나는 이정윤 예술감독이 ‘관객과 함께하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큰 안무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점이 반가웠다. 그 일을 자기의 언어로 펼치고자 뛰는 의욕과 안목을 느꼈다. 그렇게 하면 어딘가에서 ‘소생’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예측해보건대, 신임 예술감독의 개성과 지향은 부산 관객과 호흡이 좀 맞을 것 같다.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