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방이듬’ 운영 에피소드 담아

시인 김이듬이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숫가에 동네책방인 ‘책방이듬’을 낸 건 2017년이다. 그리고 책방은 아직 영업 중이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동네책방 주인의 꿈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책방이 어찌나 알차게 운영되는지 그 동네의 명물이 됐다고 하니 그 정도면 자영업으로서도 꽤 성공한 것 아닌가 싶지만, 책을 읽어보면 여느 영세가게 못잖게 ‘짠내’가 물씬 난다. 어느 시인의 책방 운영 성공기였다면 이만큼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이면서 작은 동네책방 주인이기도 한 김이듬. 책방 운영 에피소드를 모아 산문집을 냈다. 국제신문DB

김이듬이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틈틈이 써서 산문집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를 냈다.

책은 아담하고 예쁜 책방을 운영하며 소소하지만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시인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자영업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쓰기만 했던 작가가 독자들과 일상에서 만나 책으로 소통하는 ‘이상’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건물주 노부부에게 월세를 깎아달라고 청하고 완곡히 거절당하는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건물주의 호의로 1년째 되는 달에 한 달 치 임대료를 탕감받고, 황석영 같은 대작가가 선뜻 책방 강연을 허락하기도 하는 등 유명 시인의 어드밴티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책방은 스스로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시인의 다른 수입으로 공백을 메운다. 그래서 시인은 유명 시인도 작가도 아닌 보통의 동네책방 주인에게 공감하고 미안해한다.

‘어쩌다 책으로 약장수처럼 살게 되었을까’라는 글에서는 동네책방의 존재 이유 같은 것을 발견한다. 어느 날 지친 표정으로 책방에 들어선 남자는 두 시간이나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고민을 시인에게 털어놓는다. 시인은 얘기를 듣고난 뒤 시집 두 권을 추천해주고, 남자는 한결 나아진 얼굴로 시집을 사서 책방을 나선다. 이 시집은 처방전이다. 10% 할인도 없고 책도 몇 권 없는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처방전을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주인의 철학과 취향에 따라 구비한 소량의 책들이 그날 어떤 이유로 그 책방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 처방전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몇 권의 책이 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거나 직면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어쩌면 책은 상처나 환부를 쓰다듬고 위로하며 덮는 게 아니라 적나라하게 까발려 첨예한 통증과 직면하게도 한다… 나는 오늘도 가장 시급한 자기 혁명의 일환으로 책 처방을 계속한다’.

불빛 아래 책에 열중한 사람들을 위해 (인류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같은 사명감을 느끼며) 형광등을 갈아 끼우는 시인은 어쩌면 직업적 소명의식을 자각한 경건한 자영업자의 면모를 갖춘 것도 같다.

김이듬은 시집 ‘히스테리아’의 영역본으로 지난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전미번역상은 미국 문학번역가협회(ALTA)가 매년 시상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학번역상이다.

한국문학 작품이 전미번역상을 수상한 것은 ‘히스테리아’가 처음이었고, 한 해에 같은 작품이 2개 이상의 상을 받은 것도 미 문학번역가협회가 문학상을 제정한 이래 처음이었다.

김 시인은 현재 국제신문에 칼럼 ‘아침숲길’ 필진으로 글을 쓰고 있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