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 서규정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정면으로 보이는 수평선 끝에서

　제3국의 잠수함이 쏜 핵미사일이 터진 것 같다

　모두 다 몰살일 것 같은데 더 깨끗이 씻은 듯

　벚꽃은 핀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책, 출판기념회를 서두르며

　벌써 몇 번이나 외쳤어

　영원은 순간에 답해야 되고

　순간은 영원에 값해야 한다고

　혼자 주절거리는 그 앞으로

　한 떼의 새내기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서로 어깨와 어깨를 두르고 넘실대는 파도와 같이

　대 번영과 약속의 세계를 위해 출렁거릴 뿐인

　저 청춘이라는 실력



　파르르 떠는 꽃잎도 좀 보아

　한발 앞선 시간의 등을

　긁고 또 긁는 손톱만 같아

　손톱, 늪



　내생을 다해 건너도 닿지 않을

　뒷모습들이 있을까, 어디서 플루트 부는 소리가 환청처

　럼 들려



　 시집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에서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정면으로 보이는 수평선 끝’ ‘제3국의 잠수함이 쏜 핵 미사일이 터‘지고 ’모두 다 몰살일 것 같‘다로 시작하는 시의 서두. 핵 저장고를 물고 있는 수평선을 배경으로 핵미사일이 일으킨 새하얀 구름 기둥 풍경은 마치 영상물 엔딩 장면처럼, 스펙터클하다. 원전은 위험과 필요 사이에서 아슬아슬하다. 그것을 낙원으로 부르든 무릉도원으로 부르든 유토피아로 부르든, 이상향이란 멀리 보기엔 있어 보이다가도 가까이 가면 사라지는 수평선 같은 것이 아닐까?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 발전소는 1971년 11월에 착공하여 1977년 핵연료 48톤을 원자로에 채워 넣고 같은 해 6월 실험발전을 하여 국내 처음으로 원자력에 의한 전기를 공급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생각 또한 처음과 달리 퇴색되는 것이라 어제의 희망이 오늘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탈원전에 박수를 보냈다가도 색다른 목소리에 중심의 추가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나약함이다. 강력한 무기를 지녀야 적으로부터 내가 강해지는 것 같은데 평화를 추구하는 나로서는 소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를 공격하는 적에게 한 방 날려버리고 싶은데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마음은 시인처럼 ‘더 깨끗이 씻은 듯’ 슬프게 ‘벚꽃은 핀다’. 곧 바람에 사라질지라도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조 같다.

　시만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을 생계형 시인이라 했던가, 알코올에 몸을 팔아 시를 쓴다는 바람의 소문을 듣기도 한 것 같은데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책’이라는 시인의 넋두리는 ‘출판기념회’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회한 같다.

　순간순간 최선의 신념으로 질문해오는 ‘영원은 순간에 답해야 되고’ 시인으로 사는 ‘순간은 영원에 값해야 한다고’ ‘혼자 주절거리는’ 그의 앞에는 늘 그랬듯 앞서가는 세상의 등이 닿을 듯, 잡힐 듯, 거리를 둔다. ‘우르르 몰려가는 새내기 대학생들’ 같고, ‘어깨와 어깨를 두르고 넘실대는 파도처럼 역동적’인 세상은 ‘대 번영과 약속의 세계를 위해 출렁거릴 뿐’이며 거리를 둔 ‘저 청춘’이 곧 현실과 닫지 않는 세상의 뒷모습이다. 그러나 시인의 ‘파르르 떠는 꽃잎’처럼 호소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 같다.

　‘긁고 또 긁’힌 ‘시간의 등’과 시인의 ‘아픈 손톱’에 벌겋게 엉킨 피의 ‘늪’을 지나면 시인의 ‘파라다이스’가 있을 것이다. ‘생을 다해 건너도 닿지 않을 뒷모습 들’은 피를 흘리고 있는 시의 뒷모습일 것이다.

　‘플루트 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것 같은, 머잖아 벚꽃 흐드러질 봄날은, 누군가에게는 낙원의 봄날로, 누군가에게는 고독의 봄날로, 누군가에게는 설렘의 봄날로, 그렇게 천천히 당도할 것이다.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