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여름 제주도 함덕의 공연 뒤풀이에 백현진이 불쑥 나타났다. 1997년 어어부 프로젝트 ‘손익분기점’이란 수상한 앨범을 낸 뒤부터 나는 백현진의 팬이다. 백현진의 첫 솔로 앨범 ‘반성의 시간’은 아마 가장 많이 들은 음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앨범이 나온 2008년 봄. 아무것도 안 하고 방바닥에 누워 반복해서 들으며 나름 반성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나지막이 읊조리거나 울컥 울부짖는 그의 목소리에선 소주 막걸리 맥주 양주가 뒤섞인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한 곡 한 곡이 단편영화처럼 일상적이나 어딘가 낯선 풍경과 절절한 이야기를 담아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딴짓 하긴 힘들었다.

불쑥 나타난 백현진은 함께 있던 부산 가수 김일두를 발견하고 덥썩 끌어안고 특유의 목소리로 김일두의 노래 ‘문제없어요’를 군가처럼 힘차게 불렀다. 오랜 팬으로서, 예상치 못한 그 상황을 경이롭게 보고 있던 내게 유치원 동창이 슬쩍 물었다. ‘저 사람 탤런트 아이가?’ 탤런트? 문득 탤런트란 말이 몹시 낯설었다. 하긴, 드라마에서 종종 봤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아니, 어쩌면 훨씬 많은 이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 사람이 음악도 한다고?” 라며 놀랄 사람이 지금은 압도적으로 더 많을 것이다. 드라마 ‘모범택시’ ‘악마판사’,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을 통해 막강하고 리얼한 악역으로 이경영 김의성 자리를 위협한다.

백현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 후보에도 올랐던 미술가다. 박찬욱 김지운 이경미 감독의 영화음악에 참여한 영화음악가다. talent는 재능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처럼 확실한 탤런트가 있을까? 최근 개봉한 영화 ‘십개월의 미래’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해피니스’에도 출연한다. 이젠 연기 활동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질 것같다.

마동석이 마블 영화에서 거대한 괴물에게 싸대기를 날리던데, 수퍼히어로와 맞서는 빌런을 연기하는 백현진도 그다지 황당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썩 잘 어울릴 것 같다. 백현진 연기에 매료된 많은 이에게 조심스럽게 그의 음악을 추천해본다. 지금껏 주변에 추천해온 결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편이라 조심스럽다. 다소 불편하거나, 깊이 푹 빠져 헤어 나오기 힘들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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