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년간 중국 대륙 누비며 분석
- “중원보다 외곽서 생장한 에너지
- 중국·한국 수천 년 역사의 원천”
- 조선 상인·독립 운동가도 소개

다 읽고 말았다. ‘절반만, 아니 3분의 2까지만 보고 빨리 요령껏 서평 기사 써야지’ 하고 먹었던 애초 간사한 마음은 ‘조금만 더, 한 페이자만 더’로 바뀌었다. 끝내 ‘제7장 변방의 혁명가’와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이의 노력과 협력이 필요한지 알게 해주는 ‘에필로그’까지 읽고야 말게 하는 힘을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윤태옥의 ‘변방의 인문학’은 발휘했다.

저자가 최고의 중국 변방 여행지로 꼽는 윈난성의 루구호 전경. 이곳에 사는 모쒀족은 모계-가모장제-대가족으로 살아 왔다. 모쒀 족의 페미니즘은 시야를 넓혀주며 우리를 돌아보게 돕는다. 시대의창 제공

부산이라는 변방에 살아서 ‘변방의 인문학’에 더 끌린 걸까. 그런 점이 없진 않지만 그건 일부다. ‘변방의 인문학’은 시야를 넓혀버린다. 이 책은 사회와 역사를 밀고 가며 바꾸는 에너지에 관한 책이다. 그 에너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어디서 오는지 집요하게 탐색한다. 어떻게? “(이 책은) 달리 보면 나의 중국 여행을 변방이란 키워드로 다시 반추한 것이다. 2006년부터 코로나19가 가로막기 전까지 만 14년 동안 나는 중국이란 나라의 영토를 꽤 많이 여행한 편이다. 매년 6개월은 중국 어디선가 혼자 또는 동반자들과 함께 먹고 자고 돌아다녔다.”(8쪽)

잠깐 생각해보자. 왜 단군의 아버지는 환인의 ‘서자’인 환웅인가. 그리스 신 가운데 최강인 제우스는 왜 크로노스의 장남이 아니라 막내일까. 부모의 병을 끝내 고친 바리데기는 왜 일곱 딸의 막내인가. 한반도를 통일한 나라는 왜 작고 약했던 신라인가. 중국을 처음 통일한 건 왜 세련된 중원의 ‘메이저’가 아니라 궁벽한 서쪽에서 오랑캐 취급받으며 출발한 진(秦)인가. 한국 대통령들 출신 고교는 왜 대부분 심장부 서울이 아니라 이른바 ‘지방’인가. 이성계의 근거지는 동북면이었고 송강호는 김해고, 오달수는 혜광고, 이창동은 대구고를 나왔다.

“새 시대를 여는 시대의 에너지는 중원보다는 변방에서 생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335쪽)

“동아시아 수천 년 역사를 보면 변방에서 생장한 에너지는 중원으로 몰려들었고,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거대 권력은 그 자리에 눌러앉았다.”(212쪽)

“창업 군주인 황제는 정작 변방에서 온다. 거칠게 태어나고 치열하게 성장하여 대륙을 제패하면 중원에 깃발을 꽂는다.…황제는 변방에서 왔지만 황태자는 자금성서 태어난다. 황태자는 궁녀와 환관과 먹물 대신에 둘러싸여 상속받아 황제가 되지만, 또 다른 변방 어디선가는 그 다음 황실을 낳으려는 배란과 수정과 착상이 수없이 일어난다.”(프롤로그)

하다 보니, 기사가 너무 정치 쪽으로 흐른 듯한데 저자의 참뜻은 그렇게 좁거나 특정 영역에 갇히지 않는다. 윤태옥 작가는 중국 변방을 때로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때로 혼자 때로 전문가와 함께 여행하면서 일관되게 시야를 넓힐 것을 강조한다. 그의 권고대로 시야를 넓히면, 안 보이던 게 보이고 결국 관점이 뒤집힌다. 땀 냄새가 배어 있는 이 책의 묘미다.

목차를 살펴보자. 1장 서역으로, 2장 신장에서, 3장 북방기행, 4장 만주족 역사, 5장 바다의 역사, 6장 가까운 오지, 7장 변방의 혁명가다. 멀고 먼 가욕관까지 갔던 조선 상인 문초운을 만나고, 대당 제국의 시원인 탁발선비 알선동을 생생히 그린다. 바다의 역사를 다룬 5장에서 옛 한반도인을 비롯한 동북아 사람들이 바다에서 얽힌 사례와 이유를 보여준다. ‘샹그릴라로 가는 길 1-루구호 모쒀족의 페미니즘’은 껍데기를 깨고 속살을 꺼내 보여주는 맛이 있다. 마지막 장에서 류자명 김산 진광화 윤세주 허형식 등 중국 변방에서 민족 독립을 위해 비바람 모래바람뿐 아니라 빗줄기 같은 총탄에 맞서 싸운 한국인을 기록했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