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을 알리며 작은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와 벚꽃이 지나가면 점점 뜨거워지는 햇살과 함께 크고 화려한 모란이 우리 곁을 채운다. 예부터 꽃 중의 왕(花中王)으로 불렸던 모란은 씨앗을 심어 풍성한 꽃을 피우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 귀한 꽃이다. 궁궐의 후원이나 권문세가의 정원을 구성하는 주요한 꽃나무로 가꾸어져 왔다.

중국이 원산지인 모란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중국 당나라 태종이 신라 진평왕에게 모란 그림과 씨앗을 선물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공주였던 선덕여왕이 모란 그림을 보고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말한 이야기는 선덕여왕의 영민함을 드러내는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모란을 향기 없는 꽃이라 인식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않다. 풍염한 꽃의 생김새만큼 모란은 매혹적인 향을 발산한다.

주위를 그윽하게 감싸는 모란 향기는 부산박물관 소장 ‘남계우의 모란·나비 그림’(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다. 탐스러운 자태의 희고 연붉은 모란꽃, 잔잔한 바람이 부는 듯 가볍게 흔들리는 잎사귀, 모란 향기에 취해 춤을 추듯 날아다니는 나비를 함께 그렸다. 세밀한 묘사로 보아 이 작품은 모란향 가득한 정원에서 만개한 모란과 나비를 살펴보며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을 그린 남계우(南啓宇·1811~1890)는 ‘남나비’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나비 그림으로 유명한 문인화가이다. 어려서부터 나비를 좋아해 직접 채집하고 자세히 살펴 정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나비를 표현했다. 이 그림에도 사향제비나비와 호랑나비를 중심으로 배추흰나비, 부처나비 등을 다양한 형태로 배치하여 구성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그는 나비와의 조화를 위하여 등나무꽃, 부용, 나리 등 다양한 꽃을 화폭에 담았으나 모란과 함께 그린 예가 많다. 모란의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에 매료된 나비를 표현하고픈 마음뿐만 아니라 부귀를 뜻하는 모란과 장수를 상징하는 나비를 함께 그려 복을 기원하는 마음도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계우는 나비에 대한 시를 함께 짓기도 하였다. 이 그림의 상단에도 나비와 하나되어 모란꽃 사이를 노닐고픈 화가의 마음을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 등에 빗대 한 편의 시로 읊고 있다. 화가의 독특한 서체로 능숙하게 쓴 시는 그림의 격조를 더욱 높인다.

꽃이 활짝 피는 찬란한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고 다시 꽃이 피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길다. 이번 봄, 활짝 핀 모란 아래 춤추는 나비를 마주하며 행복한 시간을 가지길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