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신화 사냥여신 디아나부터
- 배 갈라 심장 꺼낸 아즈텍족까지
- 동서양 방대한 자료 수집·분석
- 인류와 주술의 관계 규명 애써
- 한반도 관련 사례도 20여 꼭지

- 인간 사고 주술→과학 진화 주장
- 후대 비판에도 인류학 대작 평가

주술(呪術·Magic).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 등장해 현대 디지털 세계에까지 살아남은 그 힘은 뭐란 말인가. 미신(迷信)이 아니라 ‘미신(迷神)’일까. 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손바닥에 쓰였던 임금 왕(王) 자가 현실로 걸어 나와 이 나라 권력 지형을 바꾸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술 관념은 인간 정신 한편에 도사렸다가 언제라도 외출할 준비를 한다는 건 분명하다.

디아나는 로마신화에서 야생동물·숲·달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프레이저는 이탈리아 네미 호수 인근 숲을 디아나 숭배 성소로 보고 신화적 상상 날개를 폈다. 루벤스 작, ‘사냥하는 디아나 여신’.

사실, 인류와 주술이 맺어온 관계를 규명하는 일은 인류학 전문 영역에 속한다. 그 방면에서 대중에 잘 알려진 학자가 프레이저다. 그는 에드워드 타일러 ‘원시 문화’를 읽고 고대 종교와 인류 종교 기원을 추적해 들어갔다. 인류 주술 역사를 원시에서 문명으로 인간 정신이 옮겨가는 과정 중 하나로 봤다. 현장을 파고드는 연구는 아니었다. 동서양에서 수집한 광범위한 서지 자료를 비교하는 방식을 취해 책상머리 학자라는 비웃음을 들으면서도 그는 일생을 여기 바쳤다.

1890년 초판(2권), 1900년 2판(3권), 1911~1915년 3판(12권), 1936년 3판 보충 최종판(13권)이 나왔다. 1922년 3판 축약본(1~69장)이 많이 읽힌다. 한반도와 관련된 사례도 20여 꼭지다. 저자를 흡입한 곳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동남쪽으로 24㎞ 떨어진 아리키아(현재 라리치아) 마을. 인근에 네미 호수와 숲, 성소 유적이 자리 잡았다. 프레이저는 이곳을 방문했을 때 번갯불처럼 떠오른 설화를 펼쳐 보이며 책을 연다.

■ 여신·사제·주술의 뿌리?

그는 여신을 보았다. 로마신화 속 사냥·들짐승·다산을 관장하는 디아나다. 이곳 숲은 디아나 숭배지. 1885년 이 일대에서 성소 유적이 발굴된 즈음이라 프레이저 머릿속을 디아나가 휘저어 놓았다. 디아나는 그리스신화로 치면 아르테미스 여신이다. 5년 뒤인 1890년 나온 초판 ‘황금가지’는 디아나의 미소였다. 첫 페이지에 펼쳐진 디아나 설화는 독자를 몽롱하게 만든다.

“네미 호수 숲엔 성스러운 나무가 있었고 칼을 든 사제가 그 나무를 지켰습니다. 사제는 숲을 지배하는 왕이었지만, 언젠간 살해돼야 하는 운명이었지요. 도망친 노예가 수호목 나뭇가지(황금가지)를 꺾어 보인 후 사제와 결투해 그를 죽여 새 왕이 되는 게 반복되는 성소 규칙이었답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 뒤 묻는다. “사제는 왜 전임자를 죽여야만 했을까요. 살해 이전에 황금가지를 꺾은 이유는요?”

이어 세계 주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산 인간을 제단에 눕혀 놓고 배를 갈라 박동하는 심장을 꺼내는 의례, 즉 아즈텍족 인신 공회(49장) 장면은 잘 알려졌다. 일 년 중 반드시 며칠간은 모두 광란 축제를 벌이는 이유는 뭘까. 억압된 집단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출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빚은 행동. 고대 지배자는 ‘채찍과 당근’ 원리를 통치에 썼다. 저자는 “미개인 관습 관념 중 많은 부분이 기독교 근본 교의와 유사하다”고 외쳤다. 기독교계가 강력히 반발할 수밖에. 이런 반기독교 성향 탓에 ‘황금가지’는 한때 기독교인에게 금서였다.

그는 ‘인간 정신은 본질상 비슷하다. 세계 여러 문화권의 유사 사례를 비교-연구한 결과는 가치를 지닌다’고 믿었다. “인간 사고는 주술→종교→과학으로 진화한다.” 모든 사회는 생물·사회 진화론 주장처럼 진보·개선하는 쪽으로 발전한다고 봤다. 후대 인류학·종교학계는 여기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 정신 역사를 연구한 초창기 학자가 지닌 한계야.” ‘황금가지’는 이 같은 비판을 받지만, 인류학 대작이라는 큰 틀은 굳건하다.

프레이저가 대중에게 명성을 얻게 한 분야는 주술론. 사극에서 가끔 보는, 인형을 바늘로 마구 찌르며 저주를 거는 장면도 여기 속한다. 이 경우는 타인을 저주하거나 해칠 목적인 흑주술. 반대는 백주술이다. 저자가 주창한 두 법칙. 첫째, 대상물이 닮은 데서 원하는 결과가 얻어진다(유사 법칙). 저주하려는 사람과 인형은 비슷할수록 주술효과가 크다는 개념이다. 둘째, 대상과 접촉했던 개체는 분리돼도 그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접촉 법칙). 주술 인형에 해코지하려는 사람이 소유했던 물건이나 머리카락 손톱 같은 신체 일부를 집어넣는 경우다. 전문용어로는 각각 동종·감염 주술. 프레이저는 주술을 실컷 연구해놓고 “인간 관념이 현실에 잘못 적용된 사례”라고 내쳤다.

타인이나 자신 이익을 좇는 백주술, 풍습에 가깝다. 어린이가 젖니가 빠지면 지붕 위로 던지는 풍경. 왜 지붕 위일까. 여기를 쥐가 들락거린다. 쥐가 젖니를 가져감으로써 아이가 쥐 이빨처럼 튼튼한 새 이를 얻는다는 믿음이 반영된 행동이라는 게 프레이저 해석.

■ 조선 왕조 이야기도 등장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는 아즈텍족 인신 공회.

터부(Taboo, 금기), 1777년 쿡 선장이 폴리네시아 섬 통가를 방문했는데 그곳 토속어에서 따왔다. 우리나라 수험생에게 미역국은 터부다. 엿과 포크는 백주술 상징물. 주술 터부 개념은 주술사 얘기를 부른다. 저자는 원시인이 자연을 숭배하거나 두려워하다가 자연을 통제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추론했다. 그런 능력을 갖춘 이가 주술사·사제였고 동시에 권력을 행사하는 왕이었다. 이들은 자연을 통제 못 하는 무능을 보이면, 공동체가 위험에 처하는데, 이에 대한 죗값으로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희생양 이론, 살해되는 왕).

생활용품인 매듭에도 터부가 적용된다(21장). 트란실바니아 색슨족은 해산이 다가오면 의복에 달린 모든 매듭을 푼다. 매듭=불운, 순산을 방해한다고 보기 때문. 메카를 순례하는 무슬림은 매듭이 들어간 옷은 안 입는다. 로마인은 중요한 회의나 기도·의식을 행할 때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를 금했다. 반대로 매듭을 영원한 지혜(다르마 매듭)와 생명력(켈트 매듭), 부부 화합(한국 금실 매듭)을 상징하는 존재로도 본다.

가뭄·홍수는 왕이 책임져야 할 천재였다. 6장 ‘주술사=왕’에서 조선 왕조 얘기가 나온다. 9장(‘나무 숭배’)에선 조선은 나무 정령을 섬기는 나라라고 썼다. 21장 ‘사물 터부’엔 조선 정조 급사 사례를 들었다.

프레이저가 분석한 정조 사인(死因)이 색다르다. 클로드 샤를 달레 저서 내용을 빌렸다. “정조는 등에 난 종기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지 못해 숨졌다.” 임금 몸에 쇠붙이를 갖다 대면 안 되는 터부가 빚은 죽음이란 해석. 정조실록 내용은 다르다. 왕은 승하하기 직전인 양력 8월, 심한 등창으로 피를 한 됫박 흘렸고 탕약 처방을 받았다고 기록됐다. 당시 의술 수준이 낮아 심각한 정조 등창을 치료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얘기. 고귀한 왕 신체에 치료용 칼(쇠붙이)을 갖다 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터부 이론을 접목한 프레이저였다.

1장에서 던진 두 질문에 저자는 68장에서 자답한다. 디아나 숲속 신목은 떡갈나무이고, 그것엔 겨우살이(황금가지)가 붙었는데 천공 신 유피테르가 그 속에 산다고 말한다. 숲의 왕인 사제는 떡갈나무 정령의 화신으로 자신과 신의 생명이 달린 황금가지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숲의 왕을 죽이기 위해선 황금가지를 꺾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 자신이 설정한 설화에 대한 해명은 이렇다. 그는 이 책을 ‘인간이 저지르는 오류와 어리석음에 대한 우울한 기록’이랬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정신에 대한 평가이자, 인간 욕망이 지니는 특성이 이렇다니 다소 씁쓰레하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인류 정신이 갖춘 원형이라는 원시인·미개인 의식을 파악해 보려고 몸부림친 여정 끝에 나온 이 발언이 어느 정도 현실과 맞아떨어지니까. 저자는 이게 ‘최종’은 아니라며 미래에 희망을 걸었다.

그는 동그란 지구에 살아온, 형형색색 인종을 보여주며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문명인은 원시인과 다르면서도 닮은 점도 많다는 걸 일깨웠다. 이건 우리 몸속에 잠자는 ‘오류와 어리석음’, 그 원시성이 돌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