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8년, 명종 3년. 우의정을 지내던 정순봉에게는 몹시 아끼던 ‘갑이’라는 여종이 있었다. 가비는 정순봉의 건강을 생각해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두한족열’을 말하며, 속에 품은 신발을 내놓는 등 속이 깊은 모습을 보였다.

정순봉은 갑이를 친딸처럼 아꼈다. 사실 갑이는 을사사화 때 정순봉을 저주하며 사약을 마시고 죽은 좌의정의 노비였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정순봉의 집으로 오게됐던 것.

정순봉은 어느 날부터 꿈에서 귀신을 보기 시작했고, 갑자기 시름시름 앓더니 숨을 거뒀다. 이에 그의 아내는 무당을 찾아가 점궤를 본 결과 ‘저주’가 있었다는 답을 얻었다. 집을 뒤져보니 정순봉의 베게 속에서 사람의 뼈가 나온 것.알고보니 그 뼈를 넣어둔 것은 갑이였다고 한다. 비록 어리지만 충심이 깊었던 갑이는 역질에 걸린 사람의 뼈를 구해 정순봉의 베겟속에 숨겨둬, 주인의 복수를 한 것. 갑이는 ‘두 명의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며 뜻을 세우다, 고문을 당하다 사망하고 만다.

한편 이후 갑이는 유관의 가족묘에 안장됐다. 이 같은 이야기는 ‘지봉유설’에 기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