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銀 이상화 레이스 후 눈물쏟자
- 金 고다이라 다가가 포옹·위로
- 10년의 우정 평창 명장면 부상
- “서로가 있어 함께 성장 가능해”

“상화를 계속 우러러보겠다.” “고다이라, 네가 자랑스럽다.” ‘세기의 대결’을 펼친 이상화(29·스포츠토토)와 고다이라 나오(32·일본)의 오랜 우정이 평창을 빛낼 명장면으로 떠올랐다.

지난 18일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이상화(왼쪽),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운데), 동메달을 차지한 체코의 카롤리나 예르바노바가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화는 지난 18일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ｍ에서 은메달을 확인하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먼저 레이스를 마친 고다이라는 이상화를 감싸며 따뜻하게 위로했다. 치열한 경쟁을 펼친 두 선수의 포옹은 한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이날 고다이라는 “경기를 마친 (이)상화 선수에게 ‘잘했어!’라고 한국어로 말해줬다. 왜냐하면 상화 선수에게 엄청난 부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걸 이기고 여기까지 온 상화 선수를 계속 우러러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이상화도 “고다이라와 오래전부터 함께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메달을 따든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면서 “우리 모두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상화는 지금까지 고다이라를 ‘그 선수’라고 불렀었다.

일본의 닛칸스포츠는 “정상을 걸고 경쟁해 온 오랜 라이벌의 이야기가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도 “두 선수는 서로를 ‘좋은 친구’ 또는 ‘선수로서도 존경할 수 있는 친구’라고 말했다. 숙적 관계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상화는 2014 소치올림픽을 마치고 은퇴를 고민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 탓이었다. 이상화는 30대의 나이에 기량이 만개한 고다이라를 보며 마음을 다잡고 평창을 밟았다. 반대로 고다이라는 이상화의 뒤를 쫓아왔다. 소치올림픽에서 이상화의 금메달을 지켜본 고다이라는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전성기를 맞았다. 2016년부터 월드컵 랭킹 1위를 지킨 그는 수차례 “이상화를 존경한다”고 했다.

얼음판에서 한 치 양보 없는 레이스를 펼친 두 라이벌은 지난 10년간 우정을 쌓아왔다. 고다이라는 “3년 전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내가 1등 한 적이 있다. 우승 직후 네덜란드로 가야 했는데 상화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택시도 예약해주고 택시비도 대신 내줬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상화는 스케이터로서도 대단히 훌륭한 선수”라고 말했다. 이상화는 “나오는 500·1000·1500ｍ를 모두 타는 선수다. 내가 1000ｍ를 타는 이유는 500ｍ를 타기 위해서인데 나오는 1500ｍ까지 탔다. 그 모든 종목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리스펙트(존경)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레이스 뒷바퀴(후반)를 잘 버티는 걸 보면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게 확실하다”며 “정상에 함께 있으면 서로가 성장한다. 라이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함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라이벌 구도 때문에 성장한 선수들은 또 있다. ‘스켈레톤 황제’ 윤성빈(강원도청)은 8시즌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지키던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보며 실력을 갈고닦아 평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윤성빈은 “두쿠르스는 여전히 나의 우상이다. 그는 영원히 스켈레톤에 남아 있어야 할 선수”라고 말했다.

이수환 기자 leeso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