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비교체· 손뻗기 작전도 대성공

“어젯밤엔 이게 꿈일까 봐, 자고 일어나면 다 꿈이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잠들기가 무서웠어요.”

	이상호가 지난 24일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뒤 배추로 만든 축하꽃을 들고 웃고 있다. 연합뉴스

스키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은메달리스트인 이상호(23)는 25일에도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는 듯했다.

이상호는 지난 24일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네빈 갈마리니(스위스)에게 0.43초 차로 뒤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스키가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1960 스쿼밸리올림픽부터 무려 58년 만에 시상대에 선 것이다. 변변한 연습장이 없어 집 앞 배추밭을 달리고 또 달린 이상호가 이뤄낸 쾌거이기에 감동이 더했다.

이상호가 꼽은 메달의 비결은 ‘손 뻗기’와 장비 교체였다. 그는 4강전에서 얀 코시르(슬로베니아)에게 0.01초 차로 이겼다. 이상호는 “0.5초만 차이가 나도 비교적 여유 있게 피니시를 할 수 있지만 0.1초 미만에서 승부가 갈릴 때는 최대한 손을 센서 쪽으로 뻗어야 한다”면서 “4강전 결과는 예측이 안 돼 피니시 라인에서 넘어져서 다치더라도 손을 뻗어 0.01초라도 당겨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상호는 올림픽을 앞두고 장비를 교체했다. 주위에서는 ‘모험’이라고 했지만 이상호는 과감하게 부츠와 스노보드 위에 올리는 플레이트를 바꿨다. 이상호의 선택은 적중했다. 기록도 이전보다 단축할 수 있었다.

‘무명’이던 이상호가 ‘괴물’로 성장한 배경에는 대한스키협회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상호는 2010년 8월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상호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기술적인 부분이 부족했다.

성인 무대 데뷔 시즌인 2013-2014시즌의 월드컵 랭킹도 85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될성 부른 떡잎’을 알아본 이상헌 알파인 스노보드 감독의 헌신으로 이상호는 조금씩 성장했다. 이 감독은 이상호가 국제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운전부터 마사지·요리까지 도맡으며 뒷바라지를 했다.

스키협회는 2014년 스노보드 전담팀을 꾸렸다. 이 감독을 중심으로 크리스토프 귀나마드(프랑스) 기술 전문 코치와 손재헌 체력담당 트레이너를 영입했다.

이반 도브릴라(크로아티아) 왁싱 코치와 프레드릭 시모나(프랑스) 물리치료사도 스노보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힘을 보탰다. 수영 박태환과 골프 박인비의 심리 상담 멘토인 조수경 박사까지 합류해 정신적 안정을 도왔다.

적극적인 지원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85위로 시작한 이상호는 2014-2015시즌 50위, 2015-2016시즌 32위, 2016-2017시즌 15위까지 빠른 속도로 랭킹을 끌어올렸다. 지난해 3월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해 한국 스키 선수로는 첫 월드컵 메달리스트가 됐다.

이병욱 기자 junny9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