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아닐 거로 생각합니다. 롯데를 아끼던 분이 그랬을 거라 봐요.”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은 ‘치킨 테러’ 사건. 당사자인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두 달 만에 입을 열었다.

그의 반응은 “이해는 하지만 아쉽다”로 요약됐다. 롯데가 개막 7연패에 빠졌던 지난 3월 31일 사직 NC전이 끝나고 퇴근하던 이대호의 등을 향해 누군가 치킨이 든 박스를 던졌다.

지난 20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대 두산경기. 10회말 무사만루에서 이대호가 3타점 2루타를 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에서 이대호는 잠깐 뒤를 돌아봤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시 돌아섰다. 이대호는 “저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주변에서 안타까워하시는 분이 많았다. 팬도 힘들지만 저도 평소보다 훨씬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특히 그가 걱정한 건 자신이 아닌 가족이었다. 아내와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높아졌다. “그때 아내가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그 영상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분도 가족이 있고 자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시즌 초반 부진의 늪에 빠졌던 팀과 주장 이대호는 조금씩 제 자리를 찾는 모양새다. 롯데는 개막 두 달 만에 5할 승률 가까이 다가서며 최하위에서 벗어나 순위싸움에 뛰어들었다. 이대호도 이후 맹타를 휘두르며 타율 0.366 10홈런 41타점(23일 기준)을 올렸다. 타점은 리그 전체 1위로 뛰어올랐고 홈런도 팀 내 최고 수치를 기록 중이다. 이대호는 “시즌 초반에는 여러 가지로 너무 안 좋아서 선수단이나 팬 모두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이른 시일 내에 올라와서 요즘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해온 베테랑은 상승세의 원동력도 정확히 짚어냈다. 바로 투수진과 야수진 간의 신뢰였다. 수훈선수 인터뷰 때에도 잊지 않고 그날 활약한 투수진을 꼭 언급하는 이대호다. 그는 “야구는 타자가 점수를 내고 투수가 무실점으로 막으면 당연히 이긴다. 투수와 야수가 서로 믿음을 가지고 경기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자이언츠와 기아타이거즈의 경기. 4회초 1사 1루 기아 정성훈의 2루수 플라이 아웃에 이어 송구된 볼을 1루수 이대호가 받아 1루주자 최형우를 터치아웃 시키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해외 진출한 지 6년 만에 복귀한 지난 시즌 그는 여전한 실력을 과시했다. 타율 0.320에 34홈런 111타점을 기록하며 강타자의 조건인 ‘3할-30홈런-100타점’을 달성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동갑내기 고향 친구 채태인이 합류한 덕에 1루 수비와 지명타자를 번갈아 나설 수 있어 컨디션 조절도 가능하다.

“사실 올해 거의 지명타자로만 나갈 거로 생각하고 시작했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1루 수비를 많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농담이고 태인이가 열심히 해줘서 보기 좋습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고향 유니폼을 입은 채태인을 비롯해 시즌을 앞두고 유독 ‘뉴페이스’가 많은 팀의 주장으로서 느낀 책임감도 막중했다. 이대호는 “(이)병규도 전 소속팀에서 볼 때보다 밝아 보이고 고참들이 먼저 나서서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코치님들도 이적생들을 오히려 더 챙겨주셔서 잘 지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팀의 어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도 주장의 몫이다. 주전 중 막내인 포수 나종덕이 안타를 치면 더그아웃에서 누구보다 기뻐하는 선수가 이대호다. “(나)종덕이 같은 젊은 선수가 야구장 오는 게 즐겁게 느껴지도록 선배들이 잘해야죠. 예전에는 개인 성적 욕심도 났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팀이 이기면 그만이에요.”

지난해 복귀 당시 “롯데에서 우승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라고 밝혔던 그의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한 가지 바람은 더 생겼다. “이제는 개인적으로 안 다치고 오래 야구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부산 홈팬이 사직구장을 가득 채워주시면 매번 승리해 좋은 추억을 안겨드리고 싶어요.”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