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정형외과에서 혈관 질환이 의심된다고 혈관외과 진료를 보라고 환자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예전 같으면 척추협착증이라고 여겨 장기간 치료하다가 혈관이 막혀 발가락이 괴사하고 나서야 혈관외과에 환자를 의뢰했을 것이다. 흔히 다리가 아프면 정형외과를 찾는다. 다리가 저리다거나 찌릿한 느낌이 엉덩이부터 내려온다든지, 걸을 때 다리에 힘이 빠지면 누구나 먼저 척추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어 척추 질환을 진단하고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퇴행성 질환으로 증상의 호전이 더디다 보니 혈관 질환을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척추 질환 뒤에 숨어 있는 혈관 질환이 적지 않다. 어떤 환자는 척추 수술을 받았지만 호전이 없어 마지막에 혈관외과를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혈관의 협착이 많이 진행돼 혈관 수술·시술이 곤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혈관 시술 후에 발이나 발가락 등을 절단해야 할 때도 있다.

동맥경화란 혈관에 때가 껴 혈관이 좁아지는 전신 질환이다. 심장의 혈관이 좁아지면 심장에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오고, 뇌혈관이 좁아지면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뇌경색이 온다. 다리로 가는 혈관이 좁아지면 하지동맥의 혈류가 줄어 걸을 때 허벅지나 종아리에 통증이 느껴진다. 다리로 가는 혈관이 좁아져 당장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의 동맥경화가 있는 사람에게 심근경색, 뇌경색이 더 잘 생긴다는 사실을 안다면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동맥경화는 나이가 들거나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이 있으면 위험이 그만큼 커진다. 흡연도 동맥의 협착과 경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중요한 것은 다리의 동맥경화가 진행된 환자 50~75%에서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뇌경색이 동반된다는 점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하지혈관 CT 촬영이 필요하지만, 간단한 진찰로 동맥 협착을 의심할 수 있고, 다리의 혈압을 측정하는 검사를 통해 저렴하게 동맥경화를 진단할 수 있다.

혈관의 협착이 심하면 사타구니 부위에 국소 마취하고, 풍선을 넣어 좁아진 혈관을 넓혀준다든지 스텐트를 삽입해 다리로 가는 혈류를 개선할 수 있다. 시술하기에 혈관 협착이 너무 심한 경우 정맥이나 인조 혈관으로 혈관 사이를 이어줄 수도 있다. 혈관 협착이 심하지 않으면 항혈전제, 혈관확장제, 고지혈증약을 복용하면서 빠르게 걷는 운동요법으로 시술이나 수술 없이 치료할 수 있다. 평소에는 잘 걸어갔던 곳을 몇 번 쉬어서 간다든지, 계단을 오를 때 종아리가 아프다든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이 있다든지, 흡연자는 한 번쯤 혈관 질환을 의심해보고, 혈관외과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홍경민 대동병원 혈관외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