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근처 10여 가구 확보
- 퇴원 직후 환자와 가족 거주
- 응급상황 발생 때 대처 수월

- 기부금 활용 ‘노둣돌 프로그램’
- 환자들 노동 참여 후 대가 지불
- 자존감 높이고 일상 적응력 향상

불의의 교통사고, 산재사고, 뇌졸중(뇌경색, 뇌출혈) 등을 당한 사람은 재활치료를 받아 상태가 호전되면 직장, 집, 사회로 복귀를 꿈꾼다. 하지만 편마비나 언어장애 같은 후유증이 남은 환자 상당수는 직장이나 가족이 받아주지 않는 등 다양한 이유와 사정으로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다.

부산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옆 재활마을 이창선 씨의 집에서 기타리스트 안형수 씨가 가족을 위해 연주하고 있다.

가족이 받아주더라도 환자가 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면 휠체어 출입이 곤란한 집 구조 또한 환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급증하는 1인 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병원을 선택한다. 요양병원을 돌고 또 돌고 나면 좋아졌던 몸은 예전보다 더 나빠지기 일쑤다. 악순환이 되풀이하면서 평범한 일상의 삶을 잃어버린다.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재활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퇴원 후 병원 가까이 모여 살며 자립할 수 있는 재활마을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다.

■재활마을에 10여 가구 거주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과 붙어 있는 ‘공원 옆 재활마을’.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게 문턱을 없앴다.

부산 남구 대연동 UN기념공원 인근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옆에는 퇴원한 재활 환자와 그 가족이 거주하는 재활마을이 4, 5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됐다. 현재 이곳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 병원 박인선 병원장은 퇴원 후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환자 가족과 함께 병원 인근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수십 차례 돌아다니며 집을 구한 끝에 병원 가까운 곳에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쪽방과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장애 정도에 따라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곳과 걸을 수 있는 사는 곳 등 세 종류의 건물에 월세로 입주해 살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있게 문턱을 없애는 공사를 했다. 어머니, 부인 및 자녀 등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도 있고 혼자 사는 사람도 있다.

이 병원은 사회로 복귀하기 전에 일상생활 연습과 적응을 위한 ‘트랜짓하우스’ 2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트랜짓하우스는 콘도와 개념이 비슷했다. TV, 에어컨, 조리기구와 그릇, 식탁 등을 갖춰 병원에서 퇴원한 뒤 몇 달간 생활해보면서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는 공간이다. 박 병원장은 18일 “퇴원 환자들이 재활마을에서 생활하면서 통원치료를 받고 집,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준비하고 조금씩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고 있다”며 “대부분 요양보호사나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조금씩 독립하면 더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재활 목표는 보통 삶을 사는 것

이 병원은 2006년 개원한 이래 ‘재활은 환자를 낫게 해서 집으로 돌려보는 것’이라는 철학 아래 박 병원장을 포함한 재활의학 전문의 3명이 입원환자 70여 명과 외래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박 원장이 생각하는 재활 목표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따뜻한 집에서 밥 먹고, 사람을 만나고, 자고 쉴 수 있는 집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거죠. 말로는 너무나 쉬워 보이는 보통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모를 겁니다.”

■노둣돌 프로그램

재활 환자를 재활마을을 포함해 집으로 복귀시킨다고 해서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박 병원장은 “장애가 있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그래서 난 꽤 쓸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환자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 노둣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환자가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각자의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았다. 이를테면 화분에 물 주는 일, 게임하면서 놀아주는 일, 옆자리 환자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고 잔소리 하는 일, 기도해주는 일, 식당에서 서빙하는 일, 노래해 주는 일, 병원 주위 쓰레기를 줍는 일, 책을 빌려주는 일…. 박 병원장은 이들에게 매달 10만~20만 원의 급여를 준다. 병원 직원들이 매달 월급에서 5000원~1만 원의 기부금을 내면 병원 측은 똑같은 액수를 보태 이들의 급여를 만든다. 노둣돌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이창선(43) 씨는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6개 만에 의식을 회복했으나 여전히 몸이 불편해 재활마을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병원 내 카페 ‘팬앤쿡’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이 씨는 “사고 이후 우리 가정에 웃음이 사라졌는데 재활마을은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다시 선물했다. 병원과 일터가 집 가까이 있어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부산시, 재활마을 모델 확산

부산시는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재활마을 운영 모델을 전국에 확산시키고, 전국 특별·광역시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부산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 7월 20일 이 병원과 재활마을을 둘러봤다. 시 최병무 보건위생과장은 “재활마을 모델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복동사업, 보건소 방문보건사업과 연계하는 등 지원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