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결혼 자녀 꾸준히 증가
- 한국말 잘한다고 박수쳐주고
- 수업때마다 ‘이해되냐’ 확인
- 친구들과 달리 특별상담까지
- 일상 속 차별대우 비일비재
- 교사부터 인식 바로가져야

학령인구가 감소해 국내 초·중·고교생의 수가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국제결혼을 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늘면서 흔히 ‘다문화 학생’이라고 잘못 불리는 ‘이주배경 학생’의 수가 늘고 있다. 지난해 부산지역 초·중·고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 학생은 전체 학생의 1.5%가량에 해당하는 4500명을 넘어섰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주배경 학생은 10만 명을 앞서고 있다. 하지만 이주배경 학생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은 교육 현장에서 여전하다.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면서 차이를 인정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교육현장의 말로만 ‘다문화 시대’에서 벗어나 ‘차별과 편견 없는 학교 만들기’가 필요할 때다.

부산지역 초·중·고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 학생이 전체의 1.5%가량인 4500명을 넘어섰다. 사진은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세계인의 날을 맞아 학생들이 중국의 전통옷을 입고 ‘다문화 이해 수업’을 하는 모습. 국제신문DB

■“엄마 말고 할머니가 와야 돼”

필리핀 출신인 A(30) 씨는 초등학생 자녀 2명과 유치원생 자녀 1명을 두고 있다. 10년 전 한국에 온 A 씨는 자녀들 학기 초만 되면 불안감이 극에 달한다. 학부모 상담이나 참여수업 등 학교에 갈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지난해부터 학교에 A 씨가 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A 씨는 “큰아이가 초등 3학년이 되더니 ‘엄마는 내일 학교에 오지 말고, 할머니한테 오라고 해’라고 말해 놀라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며 “‘엄마가 학교에 오면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걸 모르던 친구들도 나보고 ‘다문화’라고 놀릴 거니 오면 안 된다’는 큰아이의 말에 밤새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 B(26) 씨는 최근 첫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학부모 상담을 갔다가 모멸을 당했다. 한국에 온 지 7년이 된 B 씨는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했더니 유치원장이 ‘○○이 어머니, 한국말 너무 잘하신다. 박수 한 번 치자’고 말하더라”며 “원장이 의도를 갖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너는 특별하다’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고 푸념했다. B 씨는 “그 이후 학부모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이랑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냐’ ‘한국 음식 잘 먹느냐’는 등 불편한 질문만 계속하더라”며 “나는 괜찮지만 우리 아이도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고 부연했다.

중국 출신 C(31) 씨는 “초등학생인 아이한테 선생님이 ‘수업을 마칠 때면 ‘○○아, 이해되니’라고 물어본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특별한 관심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선생님이 어느 날엔 ‘○○이도 이해하는데, 너희들은 왜 모르느냐’고 친구들을 혼내더라는 아이의 말을 듣고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름 대신 “다문화”라 부르는 교사

친구들 사이에서 이주배경 학생이 집단 따돌림을 당하거나 ‘필리핀 아이’ ‘베트남 아이’ 등 엄마의 출신 국가를 이름 대신 불리는 일이 만연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주 여성들은 또래 친구보다 교사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면서 학교 등 교육기관의 인식 제고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학교에서 교사가 이주배경 학생의 이름 대신 ‘다문화’라고 호칭하는 충격적인 일도 비일비재하니 더욱 그럴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이주배경 학생과 학부모들이 당하는 차별과 편견의 중심에는 이들을 특별하고, 그래서 특별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B 씨가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한 것이 박수를 받을 일도 아니다. 또 C 씨의 자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 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평범한 아이다. 하지만 해당 교사는 ‘이주배경 학생인 C 씨 자녀가 이해하면 다른 아이들도 이해한다’는 그릇된 사고에 사로잡힌 것이다. A, B, C 씨 모두 “나는 한국말이 서툴고 생긴 것도 다르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말하고 생긴 것도 다르지 않다”며 “우리 아이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고, 특별한 대우를 해줄 필요도, 해서도 안 된다는 점만 선생님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다문화 학생’만을 위한 특별 상담 시간 등을 가지면서 또래 사이에 ‘이주배경 학생은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또 다른 이주 여성은 “우리 아이와 친한 친구가 ‘우정상’을 자주 받는데, ‘친구와 친하게 지내서’ 받은 상이 아닌 ‘특별한 아이와 친하게 지내줘서’ 주는 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 이석환 다문화교육팀장은 “물론 ‘다문화’의 이해와 인식이 나날이 개선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 곳곳에서, 그것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주는 교육 현장에서 이주배경 학생들을 바라보는 편견과 그로 인한 차별은 여전하다”며 “아이들의 왕따만 탓할 것이 아니라 이주배경 학생을 대하는 어른들, 교사와 학부모의 인식이 바로 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주배경 학생

다문화라는 용어가 본래 의미와 무관하게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면서 이주민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만들고, 이주민과 한국인을 구분하는 단어가 됐다. 이주배경이라는 단어에는 학생(아이)이 이주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이주했다는 사실과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중립적 의미가 담겼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에서는 다문화 학생 대신 이주배경 학생이라는 용어를 권장한다.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