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2월 28일은 기차가 스크린에 처음 등장한 날이자, 영화가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된 날이다. 영화 속 기차가 도착하자 그 시대 파리지엔들은 충격과 전율에 빠졌고, 영화가 보여준 움직임의 기적은 전 세계에 전파됐다. 인류에게 선보인 기차는 서부극, 슬랩스틱 코미디, 서스펜스 추리극, 로맨스를 넘나들면서 대륙을 횡단했다.

플랫폼은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곧 도착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이다. 어두운 극장에 앉아 영화를 기다리는 순간은 여행을 떠날 때의 가벼운 흥분과 곧 만나게 될 사람을 생각하는 설렘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 여행은 각자에게 특별한 기억과 경험을 남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관객이 각자의 영화를 발견하는 과정이자 그 영화가 나에게 말을 건네고 나를 멈춰 서게 만드는 순간과의 조응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에서 굽이도는 기나긴 길에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갈 때,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혼령과 호랑이가 나를 마주 볼 때, 장 비고의 '라탈랑트'에서 센 강을 따라가는 배의 물살이 스크린을 가득 메울 때 그 영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에게도 각자 이런 특별한 순간이 존재할 것이고, 그 지점은 타자의 삶을 드러내고 있는 영화가 우리에게 기억되는 방식이다.

영화라는 타자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었을 때 주어지는 기적 같은 순간은 자크 타티의 '윌로씨의 휴가'에서 바캉스가 끝난 후 홀로 남은 윌로씨의 구부정한 자세를 볼 때, 프랑수아 트뤼포의 '훔친 키스'에서 장 피에르 레오가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모습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계단이 문득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극장은 또한 영화와 이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장소다. 2003년 4월 1일 세상을 뜬 장국영의 죽음을 알면서도 그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했었다. 지난해 그의 10주기를 맞아 스크린에서 그의 육체를 마주할 때 비로소 그가 우리 곁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트뤼포의 유작인 '즐거운 일요일'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이 카메라 렌즈 뚜껑을 발로 차면서 장난치는 모습이나,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에서 텅 비어버린 계단이 등장할 때, 나루세 미키오의 '흐트러진 구름'에서 밤새 퍼붓던 비가 그친 다음 날 맑은 하늘을 볼 때 대가들의 마지막 영화에 새겨진 그들의 시간은 다시 이들의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상실감과 헤어짐의 슬픔과 직면하게 한다.

다시 1895년으로 돌아가면 역을 향해 들어오는 기차의 움직임과 멈춤, 승객들이 플랫폼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곧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방식이며, 영화가 인류에게 말을 건넨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차에 몸을 싣고 세상과 맞서는 버스터 키튼의 세계, 기차를 타고 서부로 돌아온 노인이 회고하는 서부의 사나이를 보여주는 존 포드의 세계, 기차 안에서 만난 인연이 이후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플랫폼에서의 만남과 기다림은 아직 우리를 설레게 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