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불황·자연재해 겪은 가족 이야기 그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해라'라는 말이 있다. 돌아가시고 '그때 잘할 걸'하고 후회할 땐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53년 작 '동경 이야기'를 반세기 만에 리메이크한 '동경가족'은 우리에게 부모와 가족, 그리고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은 섬에 사는 히라야마 부부는 자식들과 만나려고 도쿄를 찾는다.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의 방문이 반가우면서도 불편하다. 아버지로부터 핀잔만 듣던 막내아들과 그의 여자친구만이 두 사람을 따뜻하게 보살피는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면서 가족들은 한 데 모인다.

'동경 이야기'가 전후 일본 가족의 모습을 반영했다면 '동경가족'은 오랜 불황과 함께 3·11 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큰 재해를 경험한 일본 가족의 모습을 투영한다. 시간은 반세기나 지났건만 '동경가족' 속 부모와 자식 간의 삶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단 일본 가족의 삶만이 이런 모습일까? '동경가족'이 '서울가족'으로 바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의사인 큰아들네나 미용실을 운영하는 딸네는 부모를 자신의 집에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불편하다. 바쁘게 일하기 때문에 도쿄 구경도 제대로 시켜주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호텔로 모시지만 둘만 남은 노부부에게 호텔은 도리어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은 듯 어색하다. 창밖의 놀이동산 대관람차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언제 다시 또 보겠느냐"며 침대에 말없이 앉아 있는 노부부의 모습에 측은지심이 든다.

다음날 비싼 돈 주고 호텔에 있을 필요 있느냐며 돌아온 이들은 우리네 부모와 비슷하다. 오랜 친구를 만나 말 못할 자식들 때문에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는 아버지, 항상 걱정거리였던 막내아들에게 착한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어머니 또한 다르지 않다.

한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일본인만의 독특한 좌식 문화에서 나온 '다다미 쇼트'로 유명하다. 이는 다다미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앵글을 뜻하는데, '동경가족'에도 다다미 쇼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정적인 다다미 쇼트가 만들어 내는 영상 속에서 우리네 삶을 찬찬히 바라보는 맛이 '동경가족'에 있다. 개봉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