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몇 가지 이슈와 소동이 있었지만, 영화제 본연의 취지인 좋은 영화 관람에 관해 말하고 싶다. '뉴 커런츠'나 '아시아 영화의 창'에는 섹션의 목표에 적합한 영화들이 많았고, 접하기 힘든 '조지아 특별전'의 영화를 관람한 것도 다양한 영화적 순간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월드 시네마'에서는 거장 혹은 중견 감독들의 신작이 공개돼 특별한 기쁨을 선사했다.

특히 두 편의 영화가 인상에 남는다. 올해 세상을 떠난 알랭 레네의 유작인 '사랑은 마시고 노래하며'와 두 번째 영화로 이미 놀라운 영화적 성취를 이룬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토미 리 존스의 '더 홈스맨'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노장의 영화는 유작이 애도의 대상과 동일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 이렇게 귀엽고 밝은 유작을 본 적이 없다. 레네는 전작인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2012)를 자신의 유작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부고를 받고 모인 이들에게 자신의 유산을 보여주던 전작은 레네의 죽음이 임박한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더 주어진 시간을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한 레네의 유작은 만화와 음악, 노래, 연극을 횡단하며 진행되는 아름다운 소동극이자 그가 매진했던 인접예술로의 넘나듦이 집대성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전작의 포스터에서 무대의 막을 열고 들여다보던 사람의 뒷모습이 이 영화에서 막을 찢고 등장하는 사람으로 연결될 때의 감흥이다. 영화의 공간을 찢은 것이 놀라운 이유는 젖혀진 커튼 사이로 등장할 연극 무대가 영화적 현실에 아무렇지 않게 환상과 삶으로 개입되기 때문이다.

'더 홈스맨'은 여성이 주인공인 1부와 노인이 주인공인 2부로 나뉜 독특한 구조를 가진 서부극이다. 아이의 출산과 죽음이라는 공통의 무덤을 가슴에 지닌 채 미쳐간 여인들을 고향으로 데려다 주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길잡이보다 더 중요한 존재는 여성들이다. 자손을 생산하는 자궁으로서의 서부극이라는 특이한 지점이 기존의 서부극을 충실히 따르면서도(존 포드의 자장은 이 영화까지 미친다)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을 불어넣고 있다.

탈영한 기병대 병사인 노인 존스가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완성하지만, 그는 이미 서부에서 오랜 시간을 떠돌았다. 그는 마치 '수색자'의 인물처럼 허락되지 않은 땅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나는 서부로 간다"는 대사는 근래의 할리우드 영화에서조차 듣기 힘든 서부 사나이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어떤 장면보다 강렬하고 비장하며 아름답고 신비롭다. 그다지 선하지 않은 자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점차 타인의 삶을 생각하나, 운명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은 '서부'에 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92세에 세상을 뜬 레네가 관객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에 새겨진 삶의 흥취와 68세에 두 번째 서부극을 완성한 늦깎이 감독의 작품이 공교롭게도 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열어준 셈이다. 죽음과 삶을 특별한 사건으로 다루지 않으면서 영화라는 미니멀한 방식으로 제시한 레네와 서부극의 새로운 영화적 감수성을 보여준 존스 덕분에 온전히 영화로 충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