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투심 모멸감 등 섬세한 표현
- 배우·여자로서는 연륜 필요
- 20대 아닌 지금이라 이해 가능"

벌써 20년 차다. 유지태와 함께 출연했던 데뷔작 '바이 준'의 촬영현장에서 처음 만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배우 김하늘이 연기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20년을 기념이라도 하듯 자신의 농익은 연기의 담아낸 영화 '여교사'(4일 개봉)로 관객과 만났다.

	영화 '여교사'에서 정교사 자리를 이사장 딸 혜영에게 뺏기고, 제자 재하와 관계를 갖게 되는 교사 효주 역을 맡은 김하늘. 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여교사'는 계약직 교사 효주(김하늘)를 중심으로, 정교사 자리를 꿰찬 학교 이사장의 딸 혜영(유인영)과 제자 재하(이원근)의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다. 여교사와 여교사 사이의 열등감과 모멸감은 물론, 여교사와 남학생 사이의 치정 관계를 김하늘 특유의 내면 연기로 표현했다. 멜로영화임에도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 결국 결말에 이르러서는 충격적인 파국을 보여준다. 지난해 3월 결혼해 아직 새댁의 달콤함이 흐르고 있는 김하늘을 만나 '여교사'에서 보여준 새로운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0년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여교사'의 효주는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다. 20년 기념작 같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변화나 도전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진 않는다.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때 선택한다. '여교사'의 효주역이 20대 중반이나 30대 초반에 들어왔다면 다가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륜이 필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20대 때는 효주가 백수처럼 얹혀사는 남자친구를 왜 10년이나 만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효주가 이해가 간다. 그만큼 배우로서, 여자로서 효주를 이해하려면 연륜이 필요했다.

-'여교사'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 거절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질투심이나 열등감 등의 감정을 외면하고 싶었다. 게다가 효주가 느끼는 굴욕적인 감정은 정말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덮어두고 있었는데, 효주는 배우로서 굉장히 매력 있는 캐릭터였다. 시나리오가 여운이 남으면서 결국 효주를 연민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게 됐다.

-효주를 연기할 때 가장 염두에 둔 점은 무엇인가?

	계약직 교사 효주(김하늘)를 중심으로, 이사장 딸이자 정교사인 혜영(유인영)과 제자 재하(이원근)의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 '여교사'. 필라멘트픽쳐스 제공

▶효주는 감정적인 이해와 공유가 필요한 캐릭터다. 그래서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태용 감독님이 쓴 시나리오인데, 제가 해석한 시나리오의 느낌이 다를 수 있어서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 준비 작업이 중요했다.

-낙하산으로 정교사가 된 혜영에 대한 질투심과 모멸감 등을 표현해야 했다. 감정적으로 힘들었겠다.

▶대부분 장면이 굴욕적이었다. 한 남학생이 "진짜 선생도 아니면서"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뒤돌아 서 있는데도 진짜 얼굴이 화끈거렸다. 굴욕적인 감정의 하이라이트가 운동장에서 혜영에게 무릎 꿇을 장면인데, 시나리오를 볼 때도 가슴을 치면서 봤다. 그런데 촬영하고 나서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배우로서 더 굴욕적으로 보일 수 없을까, 비참해 보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신인 배우와 오랜만에 호흡을 맞췄다. 재하역의 이원근은 어떤 배우였나?

▶의지가 강해서 발레 연습을 매일 12시간씩 했다. 첫 영화라서 테크닉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김 감독님이 많이 잡아줬다. 저도 많이 도와주고 싶었다. 같이 모니터하면서 감독님이 이야기할 때 제 생각을 조금씩 이야기했다. 디테일한 부분은 원근이 스스로 잘 하는 점도 있었다. 외모적으로 재하의 이미지와도 맞았다.

-후반부 주전자 장면은 충격적이다.

▶좀 과하지 않냐는 말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굴욕적인 장면들이 있어서 후반부에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 장면이 너무 통쾌했다.

-기대보다 흥행 성적이 좋지 않다.

▶이전에 흥행영화를 많이 해봤는데 그 영화들은 로맨틱 코미디였던 것 같다. 지금의 저는 배우 김하늘을 더 폭넓게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KBS2 드라마 '공항 가는 길'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짧게 연기생활을 한다면 흥행이나 시청률이 중요하겠지만 길게 봤을 때 지금은 연기폭을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공항 가는 길'로 최우수상을 받아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전에 '신사의 품격'과 '온에어'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시청률도 그렇지만 작품을 선택할 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시청자분들이 격하게 좋아해 주셨다. '힐링이 되는 느낌이 있다'거나 '힘내라, 시청률 걱정하지 마라'라는 댓글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돈 적이 있다.

-앞으로 맡고 싶은 또 다른 모습의 역할이 있는가?

▶'여교사'나 '공항 가는 길'에서 감정을 삭이는 연기를 했다면, 이제는 밖으로 표출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 삼색 슬리퍼 신고 감정을 바로바로 표출하는 동네 언니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 감독님들이 제가 가지고 있는 그런 모습을 봐주셨으면 한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연기로 새롭게 그런 모습을 하고 싶다.

-지난해 3월 결혼했다. 결혼이 연기에 도움이 됐나?

▶부모님과 살면서 갖는 안정감과 사랑하는 사람과 살면서 갖는 안정감은 다른 것 같다. 남편이 '여교사'를 보고 "멋있다"고 했다. 많은 힘이 되어 준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