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한 건물에 세 들어 살게 된
- 무기력한 계약직 의사 역 맡아

- "상황따라 관점 다른 영화
- 배우로서 신명나게 연기
- 살인범 추리, 매력 있을 것"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다양한 변신을 꾀하는 배우가 바로 조진웅이다. 부산 출신의 조진웅은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시절부터 연극을 시작해 10년간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리고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조·단역으로 경력을 쌓았고, 2011년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로 '조진웅'이라는 이름을 관객에서 각인시켰다. 최근 들어 영화 '암살' '아가씨' '사냥', 드라마 '시그널' '안투라지' 등에 출연하며 출연작마다 다양한 캐릭터로 완벽하게 변신하며 자신의 연기 폭을 넓혀가고 있다.

	영화 '해빙'은 병원 도산 후 계약직 의사로 전락한 승훈이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수상한 부자의 건물에 세를 살며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그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가 처음으로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원톱 주연작 '해빙'(1일 개봉)으로 관객과 만났다. '해빙'은 병원 도산 후 신도시에서 계약직 의사로 일하게 된 승훈(조진웅)이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수상한 부자(신구, 김대명)의 건물에 세 들어 살며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그렸다.

조진웅은 불안하면서도 무기력한 승훈 역을 맡아 심리스릴러 영화에 걸맞은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해빙'에서 정교한 심리스릴러 게임을 이끌어가는 조진웅을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아가씨'는 누구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를 달리 볼 수 있었는데, '해빙'도 비슷한 느낌이다.

	영화 '해빙'에서 조진웅은 모든 것을 잃고 무기력해진 내과의사 승훈 역을 맡아 섬세한 심리 연기를 보여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아가씨'는 인물의 시점이 확실하게 구분된 영화다. 반면 '해빙'은 관객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상황에 따라 관점을 달리하며 볼 수 있는 영화다. 연쇄살인 사건을 두고 누구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이냐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영화를 보고 승훈과 정육점 부자 중에 누가 범인인지를 두고 관객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

-영화 촬영 내내 무기력한 승훈을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쉽지 않았지만 배우로서 신명 나는 작업이었다. 나도 모르게 '연기되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세 들어 사는 원룸의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에 앉아야 하는 장면에서 문 앞에 서서 그냥 주저앉은 적이 있다. 원래는 NG지만 스태프 모두가 집중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또 대사를 읊조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가운데 정육점 부자가 살인자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든 승훈의 감정으로 연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계산하지 않았던 연기라는 말인가?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 제가 연기한 악역은 성격이 명확했다. 그래서 인물의 히스토리가 필요 없는 극의 진행을 위한 기능적 역할을 했다. '해빙'의 승훈은 그렇지 않다. 영화 속에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상황에 따른 반응을 만들어야 했다. 연기에 변수가 많은 인물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이혼한 전 부인(윤세아)이 원룸에 온 장면이다. 원룸에 함께 있는 장면에서 원래 대사가 많았는데 거의 말이 연기했다. 윤세아 씨가 앉아 있는 저의 어깨에 손을 얹는데 정말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승훈의 입장에서 원룸은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곳에 전 부인이 와서 위로하듯 어깨에 손을 얹으니 순간 무너지는 승훈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대사를 하지 못했다.

-본래 조진웅 씨의 연기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

▶작업마다 메가폰을 쥔 사람의 성격이 다르니까 그에 맞춘다. 매운 고추로 캐스팅되면 맵게 연기를 해야 하는데, 태국 고추인지 청양고추인지 고민한다. 그래서 작업마다 달라진다. 하지만 '해빙'은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원톱 주연을 맡았다. 그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원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하면 의식이 될 것 같았다. 수많은 동료, 스태프, 그리고 감독님이 있으니까 굳이 그렇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승훈 역할을 위해 체중도 18kg이나 감량했다. 무척 똑똑해 보였는데, 지금은 다시 살이 붙은 것 같다.(웃음)

▶원래 95kg 정도 나가고 0.1t을 찍기도 했는데, 이 감독님이 캐릭터를 위해 살을 빼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78kg까지 뺐다. 그리고 촬영을 마치고 나서 다시 몸무게가 돌아왔다. 나는 미식가는 아니고 애식가다. 음식을 좋아한다.

-혹시 살면서 승훈처럼 무기력해진 경우가 있었나.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작업이 안 풀리면 '오늘 여기서 죽으면 깔끔할 것 같다'는 생각한다. '이렇게 연기하고 관객을 만나야 해? 안 하고 말지'라고 생각한다. 풀릴 때까지 사람을 만나거나 고민해서 어떻게든 풀리게끔 한다. 안 풀리면 연기를 못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한 것 같다. 후배들이 "평생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은 무엇인가?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이번 영화를 하면서 신명 났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재미있고 그 이상은 없다. 현재 영화 '보안관', '대장 김창수'의 촬영을 마쳤고, 윤종빈 감독의 '공작' 촬영을 시작했다. 할 수 있을 때 연기를 많이 해야 한다. 새로운 영화를 하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