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인 이맘때가 섬 여행의 최적기다. 해변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있고 절벽을 안은 섬산을 한번에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섬이 참 많다. 전국에 5500여 개가 있다고 하니 하루에 한 곳씩만 가도 꼬박 15년이 걸린다. 지도를 펼쳐 부산에서 남해안으로 눈을 옮긴다. 거제도와 통영 사이 섬 두 개가 실처럼 가느다란 선으로 연결된 비진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령 같기도 하고 가슴 가리개 같기도 하다. 비진도는 '보배와 비교될 만큼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이라는 뜻이다. 별칭은 미인도다. 일본어로 미인을 비진이라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걸까 아리송하다. 매력 가득한 비진도의 하룻밤을 기대하며 배에 오른다.
■에메랄드빛 해변과 만나다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서 뱃길로 12㎞ 떨어진 비진도 외항으로 들어간다. 차량은 터미널에 주차해야 한다. 관광객이 가득 찬 배를 상상했는데 평일이어서 그런지 여유가 있다. 배는 한산도와 용초도 오곡도 등을 지나치며 쏜살같이 내달린다. 비진도에는 내항과 외항 두 마을이 있는데 여행객들은 비진도해수욕장과 각종 볼거리가 있는 외항에서 주로 내린다. 하나 기억할 게 있다. 비진도는 안섬과 바깥섬이 있는데 안섬에는 내항마을과 외항마을이 있고 바깥섬에는 외항 선착장과 '비진도 산호길'이 있다. 산호길은 한려해상국립공원관리공단이 통영의 6개 섬에 조성한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중 으뜸으로 꼽힌다. 안섬과 바깥섬을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연결한다.

항해한 지 40분이 되자 외항 선착장에 관광객을 토해낸다. 산꾼을 비롯해 연인 가족 등 다양하다. 이들을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와 나무액자 같은 거대한 포토존이 맞는다. 숙소가 있는 맞은편 외항마을로 넘어가려면 '아령의 손잡이'를 건너야 한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다. 서쪽인 왼쪽에는 순백의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몽돌이 가득하다. 비진도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약 550m를 걸어 외항마을 표지석에 닿는다. 갈림길 왼쪽은 비진도해수욕장을 끼고 숙소가 밀집한 '외항길'이고 오른쪽은 내항마을로 이어지는 '비진도길'이다.

옥빛바다 나눈 모래와 몽돌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해변으로 뛰어가 보지만 물이 차가워 머뭇거려진다. 같은 숙소에 머무는 20대 청년 두 명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인용 카약에 오른다. 처음엔 카약이 기우뚱하더니 곧 바람을 가르고 쑥쑥 나아간다. 앞에는 볼록한 배를 드러낸 채 하늘을 향해 벌렁 누워있는 충복도가 해변을 보호하고 있다.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어 배를 채운다는 뜻으로 충복도라 불리지만 봄이면 진초록으로 물든 나무숲이 화사한 봄 여인의 옷처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하여 춘복도라 불리기도 한다.

■일몰과 섬에서의 하룻밤

일몰·일출 한 곳에, 해가 노는 곳

오후 5시. 당일치기 관광객이 떠나자 묘한 감정에 휩싸이면서 섬 주민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섬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다 숙소로 돌아오니 삼삼오오 모여앉아 바비큐 파티를 벌이고 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외항마을 입구로 나선다. '해동회맛집'을 찜해두고 마을을 둘러보지만 금요일이라 몇 개 있는 가게조차 문을 열지 않아 찜한 가게로 돌아온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맛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연산 회를 내는 주인 내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회는 신선한 기운이 감돌고 매운탕은 맛보지 않으면 후회할 만큼 끌린다. 푸짐하기도 하다.

옆자리의 전주에서 온 부부와 대화를 나눈다. 40대 후반쯤 됐을까. "아이들 다 키우고 지난해에 비진도에 처음 왔는데 너무 좋아 올해도 1박 2일로 찾았어요. 이곳은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한 곳이랍니다." 때마침 붉은 기운을 띤 해가 충복도 위에 걸린다. 그 넓은 바다 가운데 저 작은 섬 위쪽으로 해가 걸쳐지는 게 신기하다. 비진도 산호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들 부부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산호길을 걸었단다. "지난해 처음 방문했을 때 선유봉으로 곧장 올라 이번에는 역방향으로 올랐는데 제주 사려니숲길 못지않았어요." 이들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니 금세 어둑해졌다. 거센 바람에 파도도 거칠어진다. 베란다에서 해변이 보이는 숙소를 골랐는데 창문을 여니 쌀쌀하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일출과 비진도 산호길

사려니숲길 닮은 4.8㎞ 산호길

일출도 보고 산호길도 걷기 위해 새벽 4시30분에 일어난다. 알람 소리도 잘 못 듣는 내가 달라진 건가. 외항마을 입구로 나서 보지만 오전 5시가 넘도록 해무 때문에 해가 보이지 않는다. 제2 목표인 산행으로 전환한다. 산호길은 선유봉(312m)에 오른 뒤 해변을 보며 걷는 4.8㎞ 코스로 느긋하게 걸으면 약 3시간이 소요된다. 탐방지원센터에서 바다백리길을 알리는 파란색 선만 따라가면 돼 길은 어렵지 않다. 갈림길이 나오지만 미인전망대의 풍경이 궁금해 곧바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 구실잣밤나무 서어나무 등 명찰이 붙은 나무를 살펴보면서 발길을 옮긴다. 오르막을 20분가량 오르자 망부석전망대가 나온다. 선녀가 내려와 살다 남편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망부석이 됐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다시 300m가량 오르자 최고 절경을 자랑하는 미인전망대에 닿는다. 안섬과 접속도로, 바깥섬 일부가 보인다. 사진을 찍는데 해무 때문에 뿌옇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 내 마음에도 해무가 끼는 듯하다. 한층 완만해진 길을 따라 흔들바위를 지나면 선유봉 정상도 금방이다. 아쉽게 정상석도 없고 전망 덱에 올라도 나무와 해무에 막혀 조망이 없다.

내리막은 전주 부부의 말처럼 제주 사려니숲길이 연상된다. 나뭇가지로 덮인 터널을 지나며 오랜만에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노루여전망대를 지나 거대한 바위로 된 설풍치(설핑이치)에 닿는다. 설풍치란 정초 눈보라가 휘날릴 때 바다로 쑥 내민 이 등마루에 눈바람이 부딪히며 은세계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백나무 군락지에서 조그만 암자를 만난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비진암이다. 편안한 길로 20분을 더 걸으면 선착장이다. 오전 7시40분이 되자 선착장에 첫 배가 도착하고 또다시 사람들을 쏟아낸다. 기자는 섬사람 2일 차로서 손님을 맞는 마음이 된다. 전주에서 온 부부처럼 내년 이맘때 또다시 찾고 싶다.


●교통편

섬으로 들어오는 사람과 섬에서 나가는 사람이 교차하는 외항 선착장.

부산에서 통영으로 갈 때는 거리와 시간, 비용 등을 종합해 볼 때 거가대교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마창대교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어 평일에 통영항여객터미널에서 비진도로 들어갈 때는 오전 7시, 오전 11시, 오후 2시30분 배편을 이용하면 되고, 통영으로 나올 때는 오전 9시30분, 오후 1시50분, 오후 5시 편을 활용하면 된다. 주말에는 오전 7시, 오전 9시, 오전 11시, 오후 1시5분, 오후 2시30분에 들어갈 수 있고, 오전 9시30분, 오전 9시55분, 낮 12시, 오후 1시30분, 오후 4시에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바다 상황에 따라 변동이 많으니 한솔해운에 문의하는 것이 좋겠다. 문의 (055)645-3717, 641-0313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