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대신동 '삼호냉면'

- 소뼈와 15가지 다양한 재료
- 이틀간 끓여 만든 육수 진국
- 맑은 고깃국물에 간 잘 맞아

# 좌동 '거대숯불구이'

- 테이블 위에 겨자·식초 없어
- 달걀부터 먹은 후 국물 한입
- 국산 메밀면 씹을수록 구수

여름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동시에 더위가 떠오르는 건 언어가 가지는 힘이다. 이와 동시에 파란 바닷가가 떠오르거나 시원한 음식이 생각나기도 한다. 냉면은 추운 겨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면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더울 때 시원한 걸 찾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 여름과 냉면을 분리하긴 어렵다.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산을 '냉면 지옥'이라고 부른다. 비슷한 종류의 찬 면 요리인 밀면은 짜고 시고 맵고 단 자극적인 맛이다. 거기에 익숙해진 부산 사람들이 조금 싱거운 듯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제맛인 냉면의 맛을 잘 모르는 거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부산이 냉면 지옥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아도 좋을 만한 냉면집 두 곳을 찾았다.

	삼호냉면(왼쪽)은 소뼈를 고아 만든 육수에 이미 새콤한 맛이 더해져 있어 입에 착 붙는다. 거대의 물냉면은 육향이 짙고 심심한 육수에 구수한 메밀면이 더해져 깔끔하다.

삼호냉면은 서구 서대신동 일대에서 40년간 가게를 운영해 왔다. 정해웅(77) 대표는 "냉면은 결국 육수와 면 맛으로 승부를 보는 음식이다. 육수는 소뼈와 15가지의 다양한 재료를 넣어 이틀간 끓여 만드는 육수 간장에 매일 끓여내는 소뼈 육수를 더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평양냉면, 함흥냉면에다 메밀냉면이라는 메뉴가 따로 있어 물어보자 정 대표는 "젊은 사람들은 고구마 전분을 이용한 면을 좋아해서 메밀냉면을 따로 낸다"고 했다.

평양냉면을 주문해 국물부터 들이켰다. 양념장을 풀기 전 맑은 국물을 한입 머금으면 시원하면서 새콤하고 감칠맛이 느껴진다. 심심한 평양냉면의 국물맛이라기보다는 밀면과 냉면의 중간 같은 입에 착 붙는 간이 느껴진다. 미리 식초를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한약재 냄새는 거의 없고 맑은 고깃국물에 간이 잘 맞는 느낌이다. 정 대표는 "식구들이 냉면을 먹을 때는 양념장 없이 육수에 식초와 겨자만 넣어서 먹는다"며 국물맛에 자신 있어 했다. 자리에 앉으면 주는 뜨거운 육수에선 생강 향이 풍겼다. 같은 육수지만 좀 더 연하게 하고 생강을 넣어 잡내를 잡았다. 이곳의 냉면은 3월부터 10월까지만 맛볼 수 있다. 추석 전후까지만 냉면을 내놓고 겨울에는 문을 닫는다.

해운대구 좌동 거대숯불구이의 냉면은 심심하면서 국물에서는 고기 특유의 향이, 면에서는 메밀의 향이 잘 풍긴다. 이상진 조리장은 "이 냉면 맛을 내려고 4년 넘게 전국의 냉면 맛집을 다 돌아다녔다"고 했다. 김유철 대표가 면과 육수의 향이 진한 맛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4년여간의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거대냉면 맛이 자리를 잡았다.

거대엔 테이블 위에 겨자나 식초가 없다. 손님이 원하면 내주지만 미리 제공하지는 않는다. 한 그릇에 담겨나온 그대로 맛을 즐겨보라는 메시지다. 그 옆엔 맑은 동치미 국물을 작은 그릇에 담아 내온다. 우선 면을 풀기 전에 국물부터 크게 한입 들이켰다. 고기의 불쾌한 누린내는 없는 고깃국물의 구수함이 있다. 이 조리장은 반으로 자른 삶은 달걀부터 먹어야 국물맛을 해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비빔냉면의 경우는 다르지만 시원하고 깔끔한 물냉면의 육수를 삶은 달걀노른자가 풀어지면서 텁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조리장의 조언대로 얼른 달걀을 집어 먹고 면을 풀었다.

거대 냉면의 면은 봉평농협에서 들여오는 메밀만을 쓴다. 메밀 80%와 밀가루 20%를 혼합해 만드는 면은 연한 회색과 베이지색을 섞은 듯한 모습이다. 씹을수록 메밀 특유의 향과 구수함이 있다. 메밀은 밀가루처럼 쫄깃한 맛은 없지만 툭툭 끊기면서 내는 향이 매력이다. 이 조리장은 반은 그냥 먹고 나머지 반은 동치미 국물을 넣어 먹으라고 권했다. 동치미 국물이 들어가니 간이 좀 더 진해지고 시큼한 맛도 추가됐다. 더욱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국물맛으로 변하는 거다. 이왕에 이 맛을 즐기러 왔다면 동치미 국물 없이 먹기를 권한다. 냉면은 거대의 다른 지점에서도 맛볼 수 있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