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행정안전부가 국내 섬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7년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33섬’을 선정했다. 그 가운데에는 지난 6월 ‘본격 여름을 앞두고 섬 여행을 떠나자’며 소개한 통영 비진도(본지 지난 6월 15일 자 17면 보도)가 ‘놀-섬’에 포함돼 있었다. 33섬 중 비진도로 포문을 열었으니 이번에는 ‘쉴-섬’을 가볼까 생각할 즈음 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가 내놓은 ‘경남의 섬 현장 취재 연수’에 참가해 ‘쉴-섬’ 중 한 곳인 지심도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여행 후에는 ‘맛-섬’ ‘미지의-섬’ ‘가기 힘든-섬’ 등 나머지 테마 섬에 대한 유혹을 어떻게 떨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됐다. 사랑의 섬, 동백꽃의 섬이라고 불리는 지심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다 지심도가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비행기 활주로에 놓인 러브러브 하트상은 이런 시대적 아픔을 사랑으로 이겨내는 지심도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휴가 기분에 마냥 들뜨기보다 광복절을 앞둔 시기니 만큼 지심도를 통해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를 한 번쯤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 원시 상태 동백숲 터널 한낮에도 컴컴
- 마끝 해안절벽·쪽빛 바다 절경 이중주
- 인어공주·호랑이 애틋한 사연 전해져
- 두 종류의 나무가 하나된 연리지 유명

- 일제 해군기지 아픈 역사의 흔적 남아
- 섬 곳곳에 콘크리트 포진지·탄약고
- ‘활주로 하트상’ 상흔을 사랑으로 승화

	아픈 역사를 간직하면서도 사랑을 이뤄주는 섬인 거제 지심도 둘레길을 걸으면 동백숲 등 천혜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은 지심도에서 승객을 태운 배가 푸른 바다를 가르며 장승포로 향하고 있는 모습으로 왼쪽 상단에 지세포자원비축단지가 보인다.

■천혜의 절경을 품은 섬

지심도는 경남 거제시 일운면에 속한 면적 0.365㎢(약 10만 평)의 작은 섬으로 해안선의 길이는 약 3.7㎞에 이른다. 17세기 후반인 조선 현종 때 15가구가 이주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주민들을 섬 밖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일본군 1개 중대가 광복 직전까지 주둔했다.

지심도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음 심 자를 닮았다고 불렸는데 숲이 우거져 지삼도라고도 불렸다. 멀리서 보면 군함의 형태를 닮기도 했다.

지심도 동백숲은 국내에서 원시 상태가 가장 잘 유지된 곳으로 꼽힌다. 한낮에도 컴컴해지는 동백숲 터널은 한여름 뙤약볕을 거뜬히 막아내 신비감마저 선사한다. 어른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안을 수 있는 300살의 동백 고목도 있다. 이 때문에 ‘자연의 오랜 숨소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 김현권 해설사는 “지심도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난 3월까지 국방부 소유로 남아 있으면서 민간 개발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이제 민간으로 이양됐지만 천혜의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심도의 또 다른 매력은 해안절벽이다. 지심도로 향하는 배에서 보면 날이 선 창이 뾰족하게 솟은 것이 마치 거대한 보석을 보는 듯하다. 해안절벽 주위로는 쪽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둘레길을 걷다 방향지시석을 지나 만나는 해안선 전망대와 반대쪽 마끝 해안절벽에서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사실 지심도라 하면 동백꽃이 절정을 이루는 3월에 찾아야 한다는 말이 많지만 이국적인 동백숲 터널과 해안절벽, 쪽빛 바다가 있어 언제라도 쉬어갈 수 있는 보배 같은 섬이다.

■사랑이 이뤄지는 섬

	지심도 둘레길에서 만난 연리지.

장승포 동백섬지심도터미널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내리면 범바위 위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인어공주를 만날 수 있다. 범바위와 인어공주의 사연이 전해진다. 용왕의 딸인 인어공주를 본 호랑이가 첫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했다고 한다. 인어공주는 용왕에게 허락을 받으러 간다며 사라졌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호랑이는 그리움과 배고픔에 지쳐 죽고 말았는데 그 호랑이가 범바위가 됐다고 한다. 인어공주에 대한 호랑이의 사랑이 안타까웠던지 범바위 위에 설치한 인어공주상은 자신을 사랑했던 호랑이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지심도에서는 사랑의 상징인 연리지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둘레길 초반에 만나는 참식나무와 포구나무가 뒤엉킨 연리지가 특히 유명하다. 이 연리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나 있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나무가 하나처럼 자라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김현권 해설사는 “사람들은 연리지를 사랑의 상징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나무들끼리 치열한 싸움을 벌인 흔적”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항상 좋은 게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이뤄지는 것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순간이다.

■아픈 역사를 껴안은 섬

	한낮에도 동굴 같이 어두운 지심도 동백숲 터널.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지심도에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상처 입은 우리나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심도는 한반도와 일본 대마도 사이의 대한해협을 지나는 길목에 있어 일제강점기 때 일본 해군기지로 이용됐다. 일제는 섬 주변이 온통 바위 절벽이라 외부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이곳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군대를 주둔시키고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다. 일제는 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킨 뒤 섬 곳곳에 콘크리트로 포진지와 탄약고를 구축했다. 지심도 트레킹 길을 걷다 보면 탐조등(서치라이트) 보관소, 포진지 4곳, 활주로, 탄약고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포진지 주위에는 남쪽은 해금강, 북쪽은 부산과 진해, 동쪽은 대마도를 향해 방향지시석도 세워져 있다. 한편 망루 쪽에는 일제강점기 욱일기를 달았다는 국기게양대가 있는데 2015년 8월 15일 새로운 철재 게양대를 세워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범바위 전설이 서린 인어공주상.

해방 후에는 국방부로 넘어가 군사시설로 묶여 있었다. 지난 3월 지심도의 소유권이 거제시로 반환되면서 1936년 일본이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을 강제 이주시킨 지 81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 일제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심도는 언제까지나 나라를 지키지 못한 우리 민족에게 아픈 역사로 남을 듯하다.


# 주변 가볼 만한 곳

- 이수도 1박 3식 민박, 거가대교 장관도 일품

	이수도 둘레길에서 본 해안절벽.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지나 지심도로 가는 길에 있는 이수도도 들러볼 만하다. 이수도는 ‘물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물이 좋아 건너편 시방마을 사람들이 이수도까지 와서 물을 길어 먹었을 정도란다. 현재는 진주 남강에서 끌어온 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수도에는 약 1시간30분 코스의 둘레길이 조성돼 있으며 파도전망대, 물새전망대, 해돋이전망대, 이물섬전망대 등이 조성돼 아름다운 해안선과 거가대교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수도의 민박은 대부분 1박 3식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점심시간에 섬에 들어왔다가 하루를 보낸 뒤 아침까지 먹고 이수도를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이수도에는 주민 43가구, 별장 등 외부 11가구 등 모두 54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섬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던 이수도 분교는 2004년 제42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이수도와 지심도로 가려면 선박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문의 이수도 010-7441-8085, 지심도 (055)681-6007

글·사진=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