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기자 가시오가피 음나무 달인 물
- 청둥오리 한 마리에 실한 전복 올려
- 팥죽 색감이나 끈적이지 않고 깔끔
- 탄력있는 살·누룽지인 곡식죽은 고소

- 달콤매콤한 맛에 치즈 듬뿍 올린 볶음탕
- 맥주 생각 절로 나는 소금구이도 인기

계절 따라 입맛이 변하는 걸 보면 우리 몸이 때에 맞게 바뀌도록 만들어져 있구나 싶다. 가을엔 과일이며 곡식이 여무는 때여서 그런지 ‘다이어터’들에게는 고역의 계절이다. 맛있는 건 많아지고 기온이 내려가니 먹을 것도 당기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 한도라면 맛있는 한 입의 행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건 거짓말임을 누구나 알지만 이 계절에는 꼭 그랬으면 한다. 가을의 허기를 든든하게 채워줄 오리 요릿집을 찾았다.

	전복구기자누룽지백숙은 마치 팥죽 같은 색깔 때문에 국물 맛이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약재로 우린 육수가 담백하고 시원하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오대감(051-625-7090)은 청둥오리 전문점이다. 청둥오리는 보통의 오리와는 육질이 다르다. 보통 오리 1마리 무게가 1㎏ 정도라면 청둥오리는 200g 적은 800g 정도다. 살은 훨씬 단단하고 쫄깃해서 백숙으로 고아 냈을 때 식감이 다르다. 지방도 일반 오리보다는 적어서 좀 더 담백하다. 조비오 대표는 “청둥오리인지 일반 오리인지 구분하는 법은 껍질에 까만 털이 보이는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둥오리의 깃털이 꽂혀 있던 모공에 검은색 부분이 남아 있는 거다. 흑돼지처럼 먹는 데는 어떠한 이물감도 없다. 단지 청둥오리임을 알 수 있는 표시다.

	흑미, 잣, 은행, 호박씨 등이 들어간 누룽지는 구수한 곡식 맛이 일품이다.

오리는 한 마리씩 요리돼 나온다. 오리 한 마리를 제대로 맛보려면 오리 백숙이 적합하다. 이날은 전복구기자누룽지백숙을 맛봤다. 이름부터 너무 거창하다고 농담하자 조 대표는 “손님들에게 좋은 재료가 들어갔다고 알려 드리고 싶어 정보에 충실하게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큰 냄비에 담겨 나오는 백숙은 마치 팥죽 같은 국물에 실한 전복과 오리 다리가 설핏 보인다. 육수는 구기자, 가시오가피, 음나무 달인 물을 쓴다. 팥 같은 색깔은 흑미와 다양한 곡식에서 나온 색깔이다. 모양새가 그래서 국물도 아주 진하고 좀은 느끼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끈적하지 않고 아주 담백하고 깔끔했다. 한약재 냄새가 나지 않을까 했던 것도 괜한 걱정이었다. 단지 구수한 곡식의 향만 날 뿐이었다. 조 대표는 “한약재 냄새는 안 나지만 22가지 약재가 함께 들어가 있어 보약이라 생각하셔도 된다”고 했다.

오리 살은 완전히 풀어지지 않고 탄력 있어 국물에서 꺼내 먹기 좋았다. 담백한 오리 살을 짭조름한 깻잎 지에 싸 먹거나 시큼하게 잘 익은 파김치와 같이 먹으니 말이 없어지고 손이 바빠졌다. 실한 전복도 부드럽게 잘 익어서 마치 쪄낸 전복처럼 부드러웠다. 이렇게 속 내용물을 건져 먹고 나면 누룽지라 부르는 곡식 죽이 남는다. 흑미, 잣, 은행, 호박씨, 해바라기 씨 등이 들어가서 고소하다. 오리 백숙을 만들 때 오리 뱃속에 채워져 있던 곡식이 육수를 빨아들여 부드럽게 익었다. 완전히 죽처럼 풀어지지 않고 곡식의 모양을 유지하면서 잘 퍼져서 씹는 맛도 주면서 아주 고소하다. 냄비에 살짝 눌어붙은 부분은 절대 놓칠 수 없다.

	약간의 단맛과 매콤함에 탄력 있는 청둥오리 육질을 느낄 수 있는 도리도리볶음탕.

도리도리볶음탕은 우선 푸짐한 양에 놀란다. 크고 제법 깊이가 있는 프라이팬에 시뻘건 국물이 가득하다. 속에는 청둥오리의 살과 떡사리, 채소 등이 다양하게 채워져 있고 그 위를 국물이 덮고 있다. 맨 위에는 부추를 차분하게 줄 세워 뉘어 놓았고 그 위에는 피자 치즈가 열기에 녹아 ‘주르륵’ 흐르고 있다. 처음 먹을 땐 피자 치즈를 건드리지 않도록 하며 국물부터 떠먹는다. 단맛과 매운맛의 조화가 딱 맛있는 닭볶음탕 국물이다. 피자 치즈가 다 풀어져서 국물에 녹아들면 국물이 너무 진해져서 부담스럽다. 부추 위에 엉겨 있는 피자치즈는 부추와 함께 살짝 들어 올려 앞접시에 담고 그 위에 오리고기를 올려서 같이 먹는다. 고기의 육질이 가금류보다는 돼지고기 안심 같은 탄력과 부드러움이 있다. 가래떡은 인근 떡집에서 뽑아다 쓰는 쌀떡이라 쫄깃함이 다르다.

그래도 청둥오리의 고소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메뉴는 소금구이다. 오리부터 굽다가 그 기름에 부추와 길쭉한 가래떡을 구워서 먹으면 맥주 생각이 절로 난다. 조 대표는 “개인적으로는 깔끔한 칭다오 맥주가 오리 구이에는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며 궁합이 맞는 술을 알려줬다. 경남 김해에서 생오리를 받아와서 그런지 어떤 메뉴에서도 오리 잡내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리 특유의 냄새 때문에 꺼리는 분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