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천적 장애 얻은 이들에게
- 책·뉴스기사 등 녹음해 전달
- 사투리 안심하면 누구나 가능

- 글 속 괄호까지 읽어야 해 당황
- 소음 심하거나 음량 작은 부분
- 정확한 전달위해 녹음 후 수정

독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권하는 일이지만 가을이 되면 더욱 자주 언급된다. 여름휴가나 더위 등으로 아무래도 들뜨는 여름과는 달리 가을은 좀 더 차분해지는 때라서 그런지 가을과 독서는 같은 말로 읽힌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는 글자를 읽을 수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책장을 넘기고 책을 들여다보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된다. 눈으로 책을 읽는 독서의 계절, 귀로 책을 읽는 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곳을 찾았다.

	기자가 부산시각장애인복지관 음성정보팀의 녹음실에서 ARS녹음 낭독봉사를 체험하고 있다. 틀리지 않고 읽어내려가는 일이 쉽지 않아 집중해야 했다. 곽재훈 전문기자 kwakjh@kookje.co.kr

시각장애인은 손가락으로 글자를 읽는 점자가 있어서 책을 읽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한편으론 맞지만 한편으로는 틀리다. 완전히 앞을 못 보며 빛을 지각하지 못하는 상태를 전맹(Total Blindness)이라고 하는데, 태어나서부터 이런 장애를 갖고 있다면 보통은 점자를 배운다. 그래서 점자책으로 모든 독서활동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사고나 병으로 시각장애가 생긴 중도시각장애인이다. 이들은 뒤늦게 점자를 익히는 것을 몹시 어렵게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활자가 주는 정보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또 나이가 많이 들어서 컴퓨터를 다루기 어려운 분도 마찬가지다.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사회 전반의 다양한 정보를 얻고 여가를 보내는 방법으로 음성 지원이 필요하다.

부산시각장애인복지관 음성정보팀이 하는 일이 이런 거다. 일간지와 주간지를 모아 기사를 선별한 뒤 분류해 몇 개씩 읽어 녹음한다. 이것을 ARS 녹음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신문, 잡지를 읽거나 휴대전화로 기사검색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시각장애인이 전화를 걸어 녹음된 기사 중 원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이 일은 복지관에서 다 해결할 수 없어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는다.

부산시각장애인복지관 음성정보팀 한송이 복지사는 “매주 한두 차례 복지관을 방문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2시간가량 낭독 봉사를 한다. 현재는 20명 정도의 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ARS 녹음 외에 시각장애인이 지정한 책을 읽어 녹음하는 녹음도서 제작 봉사도 있다.

	기자(왼쪽)에게 한송이 복지사가 낭독봉사를 할 때 주의할 점을 알려주고 있다. 곽재훈 기자

낭독 봉사는 사투리가 심해서 알아듣기 어렵거나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최소 1년간은 활동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한 복지사는 “매주 시간을 내주셔야 하니 전업주부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종에 계신 분이 대부분이다. 대학생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봉사자를 항상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낭독 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기자가 직접 녹음실에 앉아 ARS 녹음을 해봤다. 종이 맨 위의 번호는 이 파일이 저장될 이름이다. 기사는 제목을 읽은 뒤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말하고 낭독자가 누구인지를 밝힌다. 한 복지사는 “어떤 시각장애인 분은 낭독자를 지정해 지정도서 녹음을 부탁한다. 선호하는 목소리나 낭독 스타일이 있어 그런 요청이 있다”고 했다.

기자가 읽은 건 ARS용 기사였다. 대형 건설사의 수주전에 관한 내용이었고 분량은 20분 정도 됐다. 미리 읽지 않고 바로 녹음해 좀 긴장됐지만 틀리지 않으려고 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읽다가 당황했던 부분은 괄호가 있는 문장이었다.

원칙적으로 괄호도 읽어야 한다. ‘괄호 열고’하고 한 뒤 내용을 읽고 ‘괄호 닫고’라고 하는 거다. 하지만 문학류에서는 괄호의 의미를 파악한 뒤 문장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성격에 맞게 낭독해야 한다. 예를 들면 “소설 형태에서 원형문학(실화에 바탕을 둔 문학)이 시도되고 있다”는 문장을 읽는다면 “소설 형태에서 원형문학, 즉 실화에 바탕을 둔 문학이 시도되고 있다”고 해야 하는 식이다. 한 복지사는 “낭독 봉사를 처음 하는 분은 이렇게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낭독 봉사 전 자신이 읽어야 하는 내용을 여러 번 읽고 숙지한 뒤 띄어 읽거나 조심해야 할 부분을 미리 체크해 오시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기자는 전체를 다 읽진 않았고 중간 정도까지 읽었다. 한 복지사는 기자의 녹음을 들어보더니 “조금만 더 천천히 읽고 호흡을 주면서 소리를 조금 더 크고 힘있게 내는 게 좋겠다”고 평했다. 실제로 녹음을 한 뒤에 모니터링 작업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모니터링 요원들은 녹음된 낭독 파일을 들으면서 낭독 원본을 체크해 발음이 틀리거나 소음이 심한 구간, 소리가 너무 작아 잘 안 들리는 대목 등을 골라내 수정할 것을 체크한다. 듣는 사람이 좀 더 편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숨은 노력이다.

음성 서비스를 들을 때 회원가입을 하면 책갈피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이전에 듣던 파일을 연결해 들을 수 있어 연재도서 등을 들을 때 효율적이다. 복지관의 모든 음성정보 서비스는 무료지만 지정도서 녹음을 CD에 원하면 CD값 400원만 내면 된다. MP3 파일을 메일로 받을 수도 있다.

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