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항상 영화보다 가혹하다’는 말이 있다. 현실을 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려도 현실의 가혹함을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가느다란 희망의 빛줄기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감독의 마음이 투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인들이 들려준 실화를 모티브로 구성된 ‘아기와 나’ 또한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청춘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고 싶었던 손태겸 감독의 마음이 담긴 저예산 독립영화다.

‘아기와 나’ 스틸. 한국영화아카데미 제공

군 제대가 가까워진 도일은 속도위반으로 아기를 낳은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갑자기 사라지고, 남겨진 아기는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 함께 살던 어머니는 병이 들고, 여자친구의 행적은 묘연하며, 제대 후 취업은 쉽지 않다. 막다른 길에 놓인 도일은 어떤 선택을 할까?

단편 ‘야간비행’, ‘자전거 도둑’, ‘여름방학’ 등을 통해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표현해온 손 감독은 ‘아기와 나’에서도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현실성 있게 연출했다. 특히 아직 사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한 채 아기까지 책임져야 하는 청년이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겪게 되는 편견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린다.

도일에게 현실은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순간 손 감독은 희미한 빛줄기를 선사한다. 아기가 보고 싶다는 병든 어머니를 보며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좋은 부모를 찾아달라고 교회에 맡겼던 아기를 찾아오면서 도일은 삶의 용기를 얻는다. 사라졌던 여자친구도 돌아오고, 직업도 갖게 된다. ‘현실이라면 과연 이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도일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우리도 위로를 받게 된다.

한국영화아카데미로부터 7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영화 속 이야기보다 더 ‘짠내나는’ 제작기를 거쳐 장편영화 ‘아기와 나’를 완성한 충무로의 청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개봉 23일.

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