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와 영국 출신의 감독이자 배우인 케네스 브래너가 만나 품격 있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탄생했다. 1934년 발표된 동명의 추리소설이 원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탄생시킨 최고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주인공으로, 터키 이스탄불에서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초호화 열차 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두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지닌 13명의 탑승자 중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렸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스틸.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셰익스피어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어 고전적인 영국 스타일의 연기와 연출을 보여주던 케네스 브래너는 이번에도 주연과 연출을 맡아 마치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사실감을 전달한다. 먼저 포와로 역을 맡은 그는 연기에 있어 멋진 영국식 악센트와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으로 명탐정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조니 뎁, 미셸 파이버, 주디 덴치, 페넬로페 크루즈, 윌렘 대포 등 연기파 배우들이 13명의 탑승객으로 출연해 소설 속 인물들을 완벽하게 재연한다.

지금은 4대 밖에 남지 않은 65mm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진행해 좁은 기차 내부를 실제보다 넓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동시에 또렷한 색감으로 사실감을 높여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맛을 살렸다.

무엇보다 서로 엇갈리는 진술 속에서 누가 범인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아닌 누가 범인이 아닌지를 가려내는 추리기법이 사용됐다는 점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색다른 재미다. 모두가 범인일 수,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어 사건을 미궁에 빠뜨리지만 포와로는 마지막 순간 반전처럼 범인을 밝힌다. 다만 포와로가 친절하게도 전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후반부가 늘어지는 것이 아쉽다.

원작 소설과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74년 작품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 워낙 유명해서 결론을 아는 관객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품격 있는 정통 추리영화의 향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개봉 29일.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