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한 캐릭터 버리고 악역 변신
- 막판 약에 취해 독백하는 장면
- 지금껏 시도 않은 새로운 연기
- 배두나·조정석과 또 호흡 맞춰

대한민국 대표 영화배우 송강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변호인’, ‘택시운전사’에서 볼 수 있었던 서글서글했던 눈빛 대신 야욕에 휩싸인 눈빛을 보인다. ‘내부자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과 호흡을 맞춰 기대를 모으는 영화 ‘마약왕’(개봉 19일)에서 아시아 최고의 마약왕 이두삼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영화 마약왕에서 이두삼으로 변신한 송강호. 쇼박스 제공

‘마약왕’은 1972년부터 1980년까지 부산의 하급 밀수업자에서 아시아 최고의 마약왕으로 거듭나는 이두삼의 연대기를 담은 영화다. 송강호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시작한 귀금속 밀수부터 급기야 마약 밀수와 제조까지 손을 대면서 점점 돈과 권력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이두삼의 삶을 그만의 연기로 표현한다. 특히 후반부에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자신의 서재에서 마약에 취해 독백하는 모습은 그의 연기에서 보기 힘들었던 광기가 느껴진다.

또한 조정석, 배두나, 김소진, 조우진, 이희준, 김대명, 윤제문 등 연기파 배우들과 차례로 호흡을 맞추며 마치 연기 열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택시운전사’ 이후 1년4개월 만에 새 영화로 찾아온 송강호를 만나 ‘마약왕’과 이두삼에 대해 이야기했다.

-‘변호인’이 1980년대, ‘택시운전사’는 1980년 그리고 ‘마약왕’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현대사를 다룬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이유가 있는가.

▶지난 10년간 한국영화를 보면 현대극이 주류를 이루다가 사극으로 흐름이 바뀌고, 또 어느 순간 근현대사를 다룬 시대물이 나오고 있다. 그에 따라 저도 자연스럽게 작품을 선택했다. 그런데 ‘마약왕’은 시대와 이야기를 결부시켜서 강력한 발언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1970년대가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시대였고, 아이러니하게 최초로 마약이 부산에서 나돌던 시기가 맞물린 것뿐이다.

-‘마약왕’이라는 제목을 듣고 너무 직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직설적이고 센 느낌이 있다. 소재도 마약이라 관객에게 거부감이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직설적으로 가는 것이 이 작품의 본질을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세 영화의 제목이 인물의 직업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변호인’과 ‘택시운전사’는 정의감이 있는 소시민이었다면 ‘마약왕’은 사회에 피해를 주는 악역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했다.

	‘마약왕’에서 송강호(위 사진 왼쪽)와 연기 대결을 펼친 조정석과 배두나(아래 사진). 쇼박스 제공

▶그래서 선량하고 정의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일부러 악역을 선택한 것이냐고 묻기도 한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배우로서 이번 시나리오가 반가웠다. 후반부에 이두삼이 마약에 취해 겁에 질린 장면은 제가 처음 표현하는 느낌의 연기여서 새로웠다. 바람이 있다면 관객 분들이 옛날 ‘살인의 추억’이나 ‘우아한 세계’에서 봤던 송강호의 모습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송강호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영화로 ‘마약왕’을 봐주시면 좋겠다.

-후반부 마약에 취한 모습은 상상으로 만들어내야 했을 텐데.

▶마약에 취한 모습은 경험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특히 그 안에 이두삼이 느끼는 끊임없는 욕망과 비뚤어진 집착이 뒤엉킨 상태를 표현해야 했는데, 그 장면 촬영 시 ‘배우는 외로운 존재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감독도 지켜만 볼 뿐, 카메라가 돌면 혼자서 해야 하니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이두삼이 총이 걸린 자신의 서재에 앉아 있는 모습은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를 연상시킨다.

▶이런 세계를 다룬 영화의 공통점이 그런 장면인 것 같다. 미국이건, 멕시코건, 한국이건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모습이 비슷해서 그런 그림이 나온 것이라고 본다.

-이두삼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가족을 위해서 밀수를 하다가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마약 밀수를 한다. 그러다 돈과 권력의 맛을 알면서 욕망이 생기게 되고 파멸에 이른다. 이런 과정은 ‘마약왕’뿐만 아니라 마약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집착과 파멸에 대한 인생 드라마다.

-‘마약왕’은 1970년대 실제 부산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마약왕 이황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1970년대에는 초등학생이었다. 커서 그런 일이 있다고 들었고, 이번에 영화를 하면서 자료를 봤다. 하지만 ‘마약왕’의 이두삼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마약 사건을 취재해서 만들어낸 인물로 알고 있다.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호흡은 잘 맞았는가.

▶연기가 훌륭한 배우들이라 늘 긴장되고 자극된다. 조정석 씨와는 ‘관상’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났는데 워낙 친한 사이고, 배두나 씨는 세 번째인데 막내 여동생 같아서 좋다. 조우진, 이희준 씨와는 처음 호흡을 맞췄다. 이전부터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같이 연기를 하면서 짜릿함을 느꼈다.

-2019년 계획은 무엇인가. 차기작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5월, 현재 촬영 중인 ‘나랏말싸미’가 7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