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어처 만들기·콜라주 형식
- 200호 대작 포함 유화 13점
- 가벼워지고 싶은 욕망 표현

작품들 자체는 난해하기 짝이 없지만, 각각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재미있다. 캔버스 위에 거칠게 바른 가상의 공간들은 실재하는 작가의 작업실 풍경이다.

	‘CUT OUT’ 전시장에서 안지산 작가가 자신의 작품 ‘Rainbow with a broken chair’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현화랑 제공

작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엄청난 양의 흑백사진들 속에 파묻혀 앉아있는 모습, 머리에 사과를 올리고 서 있는 여성, 모자 안의 비둘기 등 웬만해선 공통의 주제를 찾기 힘든 작품들이 전시장을 잇달아 채운다.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발췌한 다양한 이미지, 대중매체나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채집한 이미지들이 재구성돼 콜라주 형식으로 나타난다. 회화지만 화면의 공간감 때문에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다.

	안지산 작 ‘Broken Sunset’.

실험적인 태도와 폭넓은 상상력으로 전통회화의 한계에 도전하는 젊은 작가 안지산(39)이 부산 해운대구 조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부산 출신인 그는 중견작가 안창홍 씨의 아들이다. 2015년 유럽에서 7년간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고향에서 여는 첫 전시다. 200호 대형 회화를 포함해 최근 작업한 유화 13점을 소개하는 전시회의 제목은 ‘CUT OUT’. 두꺼운 표면의 질감 효과와 강렬한 붓 터치, 허름한 풍경임에도 묘한 잔상을 남기며 뇌리에 박히는 그림이다.

그는 미니어처 만들기, 콜라주 등을 통해 작품 이미지를 먼저 표현해 본 후 화폭에 옮기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한다. 너덜너덜한 페인트 자국 같지만 힘이 약동하는 붓질과 섬세한 색조가 배치된 닫힌 방 같은 공간이 화폭이 된다. 그가 그리는 것은 단순한 풍경과 정물이 아니라 직관과 감성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작업실 풍경에서는 작가를 둘러싼 현실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고립감, 권태감 등의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다. “대상을 관찰만 하기보다는 그 일부가 되기도 하고, 여러 몸짓을 묘사하는 등 실제로 보고 느끼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야 조형적 요소들이 한 화면 속에서 어우러지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머리에 사과를 올리고 있는 작품 ‘Memory of cutouts’는 1980년대 한국 두통약 광고 이미지에서 착안한 것으로 주인공을 나무 패널로 세워 무대 같은 느낌을 준다.

전작인 ‘추락(Falling)’과 ‘사라짐(Dying)’ 시리즈에서 상실감과 무력감을 나타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좀 더 가벼워지고 싶은 욕망을 ‘잘라내기(CUT OUT)’ 방식으로 표현했다. 반 고흐의 작품을 출력한 듯한 흑백 이미지를 찢어놓은 작품 ‘Broken Sunset’이 대표적이다. 안 작가는 “현대 미술에서 위세를 잃어가는 정통회화의 전망을 밝게 보지 않았고, 그런 암울한 생각이 이전 작업에도 고스란히 표현됐다. 이번 작업에선 작가로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려내고 덜어내는’ 행위를 통해 표현했다”고 말했다. 필력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그림의 형식, 소재의 속성 등에 대해 치열한 성찰과 탐구를 펼쳐내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 달 20일까지. (051)747-8853

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