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자전차 대회 우승
- 조선의 영웅 엄복동 역할 맡아

- 할리우드 러브콜도 마다하고
- 한체대 코치진과 7개월 연습
- 허벅지 굵어지고 몸 곳곳 상처

- “핍박받던 한민족에게 희망 준
- 순수 청년의 열정 알려졌으면”

“하늘에는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 조선 1호 비행기 조종사 안창남과 1913년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우승한 엄복동을 두고 한 이 말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배우이자 가수로 한류를 이끌고 있는 정지훈(비)이 지난달 27일 개봉한 ‘자전차왕 엄복동(사진)’에서 억눌린 조선의 한을 달래고, 독립을 향한 희망을 일깨운 엄복동 역을 맡아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엄복동 역을 맡은 정지훈(비). 레인컴퍼니 제공

‘자전차왕 엄복동’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억압과 횡포가 극에 달했던 시기, 자전차 대회에서 일본 최강 선수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한 엄복동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엄복동은 1913년 공식적인 자전차 대회에 출전해 백전무패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일제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게 했던 조선의 영웅이었다.

정지훈은 실존 인물인 엄복동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한국체육대 사이클팀 코치진과 함께 촬영 3개월 전부터 자전거 훈련을 해 “선수가 되어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모든 자전거 경주 장면을 직접 소화하며 영화에 박진감을 더했다.

엄복동의 전매특허였던 ‘엉덩이 들어 올리고 자전거 타기’를 익히기 위해 팔다리에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정지훈을 만나 ‘자전차왕 엄복동’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었다.

-배우 이범수 씨의 첫 제작 영화인 ‘자전차왕 엄복동’은 뒷이야기가 많았다. 촬영 중 감독 교체, 엄복동의 은퇴 후 생활에 대한 논란 등이 있었다. 그래서 어렵게 개봉한 영화가 더 뜻깊겠다. 완성된 영화를 본 느낌이 어땠나.

▶기자 시사 때 딱 하나만 봤다. 배우로서 엄복동을 잘 연구해서 그분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게 연기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내가 열심히 한 만큼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한 사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나름대로 연구하는 단계부터 최선을 다했다. 다시 보면 그때는 영화에 대한 다른 것들이 보일 것 같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는가. 엄복동을 알고 있었나.

▶이범수 선배님이 ‘자전차왕 엄복동’이라고 해서 가족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존 인물이라고 해서 그때 알았다. 이후 대본을 보고 엄복동을 알리는 데 일조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영화에는 자전거 대회뿐 아니라 언덕이나 장터를 달리는 장면도 있었다. 엄복동을 연기하기 위해서 자전거 훈련이 필수였겠다.

▶대본을 볼 때부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몸으로 하는 것을 잘하는데 이번에는 진짜 몸이 힘들더라. 한국체육대 옆에 있는 훈련소에 입단해서 훈련을 받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모랫바닥을 무한 반복으로 돌았다. 훈련을 3개월 했고, 자전거 타는 분량만 3, 4개월 찍었으니 7개월간 자전거를 탄 것이다. 자전거 훈련은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경주마처럼 혼자 타니까 ‘왜 하고 있지? 지금 어디지?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나중에는 코치 선생님들이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보라고 했고,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자전거 훈련 덕분에 허벅지가 굵어져서 바지가 안 맞을 정도였다고 들었다.

▶원래 32~33인치 바지를 입었는데, 허벅지가 굵어져서 바지가 안 맞더라. 나중에는 트레이닝복을 입거나 38인치 바지를 입어야 했다.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전거 대회 장면을 보면 레이싱을 하면서 몸싸움을 한다. 위험했겠다.

▶일반 경주용 트랙이 아니라 모래 같은 흙바닥을 달리면서 몸싸움을 하니까 밀리면서 넘어지고 굴렀다. 충격을 몸으로 다 받게 되니까 상처가 많이 났다. 아무래도 자전거 장면의 키포인트는 경주 후반부에 엉덩이 들고 타는 것이었다. 실제 자전거를 흔들면서 일어서서 타는 것을 엄복동이 처음 했다고 하더라.

-자전거 선수가 아닌 인간 엄복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는가. 민족의 영웅이었던 엄복동은 선수를 은퇴하고 장물죄로 실형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자전차왕 엄복동’

▶생계가 어려워 실형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청년 엄복동은 굶주리고 순진하고 순수한 올바른 청년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엄복동을 연구하고 싶어서 친척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핍박받던 조선인들에게 엄복동은 희망,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고 하더라.

-이범수 씨가 배우이자 제작자로 참여했다. 제작자 이범수는 어떤가.

▶저도 음반을 제작한 경험이 있어 이범수 선배님이 겪은 마음고생을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범수 선배님은 끈기 있고 섬세한 분이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저렇게 섬세한 면이 있으니까 성공했겠다 싶었다.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이 있었으나 ‘자전차왕 엄복동’ 때문에 출연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자전차왕 엄복동’의 촬영이 날씨나 외적 요인 때문에 미뤄지면서 할리우드 오디션에 가지 못했다. 촬영이 지연된 상황에서 제가 오디션에 가면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1주일을 쉬어야 하는데 책임감 때문에 가겠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 또 서너 명의 배우 후보군 중 한 명으로 오디션을 보러 가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쉽지 않았다.

-배우로서 정지훈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가수로 앨범 내고 투어하면 2년 정도 걸린다. 배우로는 좋은 작품 고르고 촬영하면 몇 개월이 걸린다. 가수 활동과 연기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앞으로 다작을 하고 싶다. 현재 드라마는 논의 중이고, 영화도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있다.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배우로서 커리어를 많이 쌓으려고 한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