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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히어로 장르의 황혼을 바라보며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4 18:44:3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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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의 화두는 가족이다. 막대한 제작비와 첨단 시각효과를 총동원한 블록버스터의 핵심이 작고 소박한 가족이라는 건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틸.
영화의 시작과 끝은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의 엔딩에서 바로 이어지는 영화의 도입부는 가족의 상실로 열리고, 결말은 확장된 가족인 공동체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가족의 구성원, 어벤져스 팀원 개개인의 죽음은 곧 메타 차원의 가족인 공동체의 붕괴이며, 잃어버린 이들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은 인종과 성차를 넘어서 등장인물들의 단결과 행동을 촉구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현재의 할리우드 영화가 스크린에 펼쳐낼 수 있는 시각적 유희의 최대치이자, 가족주의와 다문화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적 이데올로기의 총화인 것이다.

망가진 현재를 고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보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얻는다는 건 시간 여행의 모티브를 취하는 영화들의 약속이다. ‘엔드게임’의 구성은 ‘백 투 더 퓨처’(1985)나 ‘스타 트랙’ 시리즈의 여러 에피소드를 닮아있다. 시간 여행이란 콘셉트는 진부하지만 영리한 선택이다. 과거 시리즈의 익숙한 장면들을 주마등처럼 환기하는 것만큼이나 세계관을 완결 짓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가 저승을 향하듯 히어로들은 죽은 이들을 되살려내고자 과거로 향하고, 스크린 밖의 관객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추억을 되새기며 상념에 젖게 된다. ‘아이언맨’(2008)의 성공 이래 11년의 세월을 함께해오며 대중문화의 일부로 녹아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대대적인 팬서비스로 일단락을 지으며 일시적인 이별을 고한다.

과거 외계인의 침공을 그린 할리우드 B급 SF 물이 소련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었듯, 슈퍼히어로물의 유행이란 포스트 9·11의 시대, 테러리즘의 시대에 처한 대중의 정신적 집단외상이 낳은 사회현상이었다. ‘아이언맨’은 미국의 바깥에 있는 테러리스트의 존재를 상정했고, ‘어벤져스’(2012)에서 뉴욕을 초토화한 외계 군단은 9·11 테러에 대한 장르적 은유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시리즈가 양산되면서 현실의 그림자는 옅어졌지만 이 전제는 변하지 않았다. ‘엔드게임’은 이 낡은 전략을 확장하고 반복한다.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세계의 을씨년스러운 진풍경, 외부의 적을 상정한 내부 공동체의 결속은 슈퍼히어로물의 토대가 어떠한 시대적 콘텍스트에서 출발했는지를 새삼 상기시킨다.

   
히어로들은 퇴장하고 신화는 끝났다. 시대는 달라졌고 장르의 동력은 소진되었으며, 더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다. 남은 건 등장인물만 바꾼 영웅 서사 모델의 무의미한 반복이거나, ‘아쿠아맨’(2018)과 ‘샤잠’(2019)과 같이 현실과 어떠한 접점도 남아있지 않은 공허한 판타지로의 퇴행이거나, ‘데드풀’(2016)처럼 이 장르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농담임을 인정하며 유희하는 일뿐인 것 같다. ‘엔드게임’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슈퍼히어로 장르의 공세 종말점이다. 이제 미국의 주류 상업영화에는 ‘로스트 인 더스트’(2016)나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등에서야 겨우 증언될 수 있었던, 그동안 외면받아온 현실의 진풍경을 어떻게 봉합하고 반영할 것인지의 문제가 과제로 놓여있다. 할리우드는 이제 새로운 반환점을 맞고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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