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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경계를 넘어, 소통을 찾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21 18:49:0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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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伊丹潤·1937~2011)은 ‘경계인’이었다. 재일 동포였던 그는 귀화를 거부하며 유동룡(庾東龍)이란 본명과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집했고, 한국의 옛 건축과 도자기, 민화의 아름다움을 참구해 자신만의 건축 미학을 빚어나갔다.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
마음은 한국에 있었지만 몸은 일본에 있었고, 일본에서는 조선인이었지만, 조국에서는 이방인이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정체성의 모호한 긴장 속에서 평생을 살며,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양국을 오가며 작업했던 이타미 준은 그 결과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갇히지 않고, 전통 건축과 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건축양식을 구축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2019)는 그랬던 한 건축가의 삶과 유산에 바치는 시적인 헌사이다.

예술가의 삶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함정에 빠진다. 고난과 갈등의 드라마를 부각시키며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요구하거나, 단편적인 정보의 해설에 치중한 나머지 작가의 예술 세계를 어떠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정다운 감독은 ‘이타미 준의 바다’를 일반적인 방송 다큐와는 다른 양상으로 끌고 간다. 섣부른 찬사를 보내지도, 필요 이상으로 내레이션을 남용하지도 않은 채, 연대기 순으로 독백을 읊조리듯이 담담한 톤으로 이타미 준의 삶과 작품의 면면을 펼쳐놓는다. 이 영화의 언어는 차분히 절제되어 있다. 지인들로부터 취재한 증언과 자료, 산문집 ‘돌과 바람의 소리’로부터 추려낸 단편적인 문장 외에 특별한 해설을 덧붙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해설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작품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은 작품의 결을 섬세히 훑는 이미지즘임을 이 영화의 카메라는 잘 알고 있다.

도입부는 작품 전체의 모티브를 단번에 함축해준다. 자연풍광 속의 빛과 그림자,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을 담은 영상은 이윽고 이타미 준이 남긴 건물의 벽면과 틈새로 드리우며 파고드는 빛과 그림자, 흔들리는 물과 바람의 결을 포갠다. 건물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건축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생물체처럼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타미 준의 건축 사상이 몽타주 컷의 이미지즘을 통해 영상시처럼 표현된다. 그리고 우리는 한 어린아이가 숲을 통과해 해변을 향하는 걸 보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꿈’(1990)의 몇몇 에피소드에서 아역배우를 유년기의 자신으로 내세웠던 것처럼, 지평선을 바라보는 아이의 이미지는 바다 너머의 한국, 그리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그리워했던 이타미 준의 심경을 대신한다.

‘이타미 준의 바다’의 화두는 ‘소통’이다. 영화의 카메라는 건물의 틈새로 파고드는 빛과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과 수면 위의 결들을 세심히 담아낸다. 이와 같은 정중동의 이미지는 환경과 더불어 호흡하는 건물, 풍화를 버티고 그 안에 시간과 기억을 머금는 건물을 짓고자 했던 이타미 준 건축사상의 요체를 말없이 웅변한다. 그리고 영화는 노인 이타미 준의 대역배우가 억새 가득한 언덕 너머로 낙조가 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대구를 이루듯 도입부와는 반대 방향에서 바다를 보는 결말의 앵글은 또 하나의 소통을 암시한다. 한국과 일본, 바다의 양 끝을 부지런히 오갔던 이타미 준의 삶 그 자체야말로 국경에 매이지 않는 소통의 길이 아니었는가하고 영화는 되묻고 있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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