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에 모 교육대학에서 유아 교육시설 신설을 추진한 바 있다. 새로 선임된 총장이 취학 전 아동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그렇게 한 것이다. 한데, 그 계획은 실행도 못 해보고 좌절됐다. 기존 민간시설 운영자들이 극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만약 새로운 시도가 그때 시행됐다면 상당한 교육 혁신이 가능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태아-영아-유아로 이어지는 어린아이의 발달 과정은 취학 후 과정보다 훨씬 중요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사설 유아원의 매 맞는 아이들은 다반사지만 개선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국가적,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 정자, 난자가 수정된 뒤 태아부터 출생 6개월까지 아기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다. 신체적으로는 우선 그렇다. 출생 뒤 4~6개월 사이의 두뇌 발달은 나머지 인생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성장한다는 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다.

유태인들이 태아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과학적 고찰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핀란드. 그곳에서는 임신 4개월 이전에 일정한 교육을 받아야 출생 수당과 엄마 수당이 부여된다. 초보 엄마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인 셈이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박근혜정부가 내놓은 고교 무상교육 때문이다. 일단 환영할 일이지만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다. 고교보다는 유아원, 유치원 등의 공교육화가 더 급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적지 않겠지만 저출산 탈출과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태어나서 고교, 더 확대하면 대학까지가 일관되고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의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무상교육이란 용어도 썩 달갑지는 않다. 공짜 교육이란 말인데 그게 적합한 것인가. 국민 세금으로 하는 교육인데 공짜라니. 자사고, 특목고 등이 포함되지 않아 그렇게 부르는 듯한데 적합하지가 않다. 어차피 대부분의 학생이 고교를 진학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용어를 의무교육으로 바꿔야 맞지 않겠는가.

흔히 교육을 국민의 의무라 하지만 국방, 납세 와는 의미가 다르다.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회피하면 처벌을 받는다. 한데 교육과 근로는 의무지만 사실상 권리에 가깝다. 개인으로 보면 교육받고 일자리를 얻어 인간답게 살 권리라는 게 합리적이다. 반면 국가는 국민을 교육시키고 일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게 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계층 간 불균형은 무엇보다 교육에서 기인한다. 빈부격차가 교육격차로 전가되는 나라, 몇몇 대학이 사회 각 분야를 장악한 기형적인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그러니 교육의 기회균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갈등의 해결과 지속적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출생부터 대학까지의 전 과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고교 무상교육 이전에 교육 철학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면 과언인가. 자원 없는 우리나라가 기댈 것은 사람뿐이다. 그러니 보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육아와 교육이 필수적인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과녁을 맞히려면 출발점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 역시 다르지 않다. 나이가 어릴수록 중요한 시기지만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아원, 유치원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육아보다는 탁아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나 유태인의 교육법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조기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감각 기능과 언어, 수리 등의 학습은 철저히 유아의 선택과 자기 존엄성, 문제 해결능력, 독립심 배양에 맞춰져 있다. 취학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토론식 수업 등을 통해 '남과 다른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중점이 두어진다. 핀란드의 경우 보육센터와 가정보육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각종 육아용품은 물론 유아 교육용 책자까지 배급되니 우리와는 딴판이다.

유아교육 교재나 시스템이 없이 고교 무상교육만 확대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다.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발굴하고 각자 개성과 특성에 맞는 교육, 그건 꿈일까. 육아와 교육은 어차피 국가가 수행해야 할 중추적인 역할이다.정부의 인식변화가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