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이 쏠렸던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병기 현 국정원장이 내정됐다. 오랫동안 뜸을 들이며 인선한 결과치고는 참신성이 떨어진다. 지난해 7월에 임명한 정보기관의 수장을 발탁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기도 하다. 국정 장악력과 안정감은 가질지 모르나, 또 그 인물에 돌려막기식 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어쨌든 이완구 국무총리 발탁과 청와대 조직개편, 4개 부처 개각에 이어 '마지막 퍼즐'인 비서실장 인사가 단행됨으로써 우여곡절 끝에 여권의 진용 개편이 일단락됐다.

역대 청와대 비서실장 가운데 이번처럼 후임에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적은 없었다. 대통령의 신임 속에 '왕실장'으로 불리며 막강 권력을 행사해 온 전임 김기춘 비서실장의 그림자가 그만큼 짙어 후임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정부의 불통과 인사 난맥, 그리고 문건파동 등의 진원지가 청와대라는 건 누차 제기됐다. 청와대가 변하지 않고는 국정이 변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많았다. 이러한 것들이 '포스트 김기춘'에 대한 관심을 부채질한 면이 있다.

새 비서실장의 우선 과제는 청와대 비서실의 정상화에 있다. 청와대에 쏠린 과도한 권력은 정상적인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불통의 원인이 됐다. '왕실장'이니 '문고리 권력'이니 하는 말들은 비서실장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됐기 때문에 나타난 비정상적 현상이다. 이런 말이 더는 나와선 안 된다. 청와대 비서실을 국정 중심이니 컨트롤타워니 하는 것도 실은 오해와 착각의 산물이다.

비서실장은 말 그대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청와대 내의 기강 확립은 말할 것도 없고, 당·정·청의 소통 강화, 국회와의 협조도 필요하다. 대통령에게는 민심의 동향을 가감없이 전하고, 필요에 따라선 직언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인기가 크게 떨어진 박 정부가 집권 3년 차를 맞으면서 국정동력과 민심을 회복하는 길도 이것이다. 새 비서실장 내정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도 변화가 있길 기대한다. 청와대와 내각이 '친박 친위부대'로 채워진 터에 대통령 자신의 변화 없이 무엇이 바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