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까지 강행하자 마침내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긍정적 사인을 내보였다. 그에 관한 미국과의 공동선언도 금방 나올 줄 알았다. 그렇지 않은가. 건국 70여 년의 역사에 혈맹의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건재하고, 이미 세계 중견국가의 반열에 올랐으니 그 정도 전략적 시나리오야 당연히 짜여있는 것이 정상이겠기에 말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이 이상하다.

우리에게는 절박한 위기 대비를 위한 자위적 군사수단이 땅의 주인과 상관없는 미국과 중국 간 거래대상이 되어버리는 듯 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사드와 관련해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드 의원총회'까지 추진하며 공론화에 나섰을 때 집권 여당은 '개인의견'으로 치부하며 정부에 맡겨놓을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랬으면 당연히 여러 상황을 가정한 정부 시나리오가 마련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상 적(敵)임을 부인할 수 없는 북한의 극단적 도발이 이어지는데 막상 내놓는 카드는 정교한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 대응이고, 그마저 옆구리를 맞고 휘청거린다.

어떻게 원내대표의 제안을, 그것도 국가안보와 관련한 사안을 개인의견 정도로 치부하며 뭉갤 수 있었던 것인지 새삼 기가 찬다. 일이 이 지경이 되니 지난해의 다른 일도 다시 생각난다. 다름 아닌 집권당 사무총장이라는 이가 미국에서 '중국이 김정은 정권에 핵우산을 제공하면서 북한 핵 포기를 요구' 운운의 발언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일이다. 그는 자그마치 별 3개의 장군 출신이기도 하다. 수복해야 할 우리의 반쪽 땅에 중국의 핵우산 운운이 가당키나 한 발상인가. 새누리당 당신들, 도대체 집권 여당 맞아?

그러면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라도 제대로 하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중의 첨예한 갈등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아닌가. 대통령의 외교방향에 불안요인이 있으면 옷 벗을 각오로 진언해 바로잡든지, 그도 못할 사정이라면 만일에 대비한 여러 시나리오를 짜 즉시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라도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일이 터지고 나니 허둥지둥 뭉갰던 카드나 끄집어내고, 더욱이 웃기는 노릇은 전자파 영향 운운하며 우리 지역은 되느니 안 되느니 하는 님비현상의 배부른 타령까지 하다가 이제 사드는 아예 멀어져 가는 분위기니 도대체 당신들, 그동안 뭘 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요?

정부 여당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자주, 민주를 입에 달고 사는 야당 아니시오.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툭하면 자주권 운운하며 국정의 발목을 잡더니 주한 중국대사 추궈훙(邱國洪)에게는 어찌 그토록 관대, 아니 무기력하시오. 당신들 혹시 지금이 명·청대쯤 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니시오. 망했거나 어쨌거나 대한제국이 선포된 것이 벌써 120년도 넘었소. 한때나마 중국의 경제발전에 한 축이 되어주기도 했소. 당당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는 말이오. 그런데 일개 대사가 외교부와 같은 공식라인도 아닌 야당 당사를 찾아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 묵묵히 듣고, 그가 원하는 대로 언론 브리핑까지 하신 것이오. 멱살을 잡지는 않더라도 대노하여 내쫓아야 할 일이거늘, 그 성능 좋던 막말 스피커까지 고장 난 듯 하니 참으로 괴이쩍소이다. 혹여 정쟁을 부추기겠다는 못된 저의를 등에 업고 당리(黨利)를 생각했다면 당신들은 구한말 파당 무리보다도 못한 패거리일 뿐이오.

'전가의 보도'처럼 의지했던 대북 확성기방송 효과도 별무신통인 듯싶다. 이번에는 우리 군에서 직접 대북 전단 살포를 계획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즉흥적 대응이 아니기를 절실히 바란다. 이미 우리의 확성기 방송에 대한 북의 대응으로 접경지역 주민들이 극심한 수면방해의 고통을 겪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가 전단을 보낸다면, 아니 북은 이미 보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저들의 대응 수위가 높아지며 단순한 전단 살포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이성이 배제된 집단을 상대하며 안일해서는 안 된다. 전단만이 아닌 다른 위해수단이 동반되었을 때, 어떻게 가장 신속히 위해를 제거하고, 그에 따른 응징과 보복을 어떤 방법으로 전광석화처럼 해치워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지 정교한 사전 시나리오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껏 주춤거리다가 뒷북이나 치는 나약한 모습으로 적의 간은 키우고, 국민의 의지는 무르게 한 것이 안보팀의 가장 큰 실책이다. 이제 우리 무기의 성능 자랑 따위로는 국민을 안심시키지도, 적을 압박하지도 못한다는 것이 여실히 입증되었다. 두려워할 것도 없다. 어차피 정권유지가 목표인 저들이다. 섣부른 잽을 날리면 강력한 어퍼컷으로 대응하고, 자랑이 아니라 치명적 위력을 뼈에 사무치도록 확인시켜준 뒤 적장의 목에 현상금까지 내 거는 야차(夜叉)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전쟁에서 지휘관의 역량이 승패의 견인차가 되는 것은 그가 병사들에게 심어주는 의지가 첫 번째 요인이다. 나약하게 주춤거리며 협상이나 퇴각을 준비하는 자세로는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다. 협상은 드러나지 않는 막후의 몫이고 지휘관은 단호한 자세에 흔들림이 없어야 병사도 의지를 불태운다. 우리 국민은 결코 나약하지 않다. 스스로 전역을 연기하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그런 국민을 일깨우는 전술, 적이 다시는 엄두 내지 못하게 할 전략이 있어야 한다.

너무 남의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 지도자의 그 탓이 백 번 타당하다 할지라도 먼저는 자기반성이다. 지나친 탓은 불안과 오기를 불러 더욱 엇나가게도 하지만, 지도자로서 설득하고 포용하지 못한 전략과 소통부재는 한편 무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적을 앞에 두고 내부의 탓에 골몰한 패전의 역사는 부지기수 아닌가. 호가호위(狐假虎威)로 무능을 가리는 참모는 적과 다를 바 없는 동배(同輩)라는 냉철한 인식도 절실히 필요하다.

아, 마음 놓고 연애소설 구상이나 하며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