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6년 12월 31일. 올해는 북항이 160세로 살았던 한 해였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1월에는 '부산항 빛 축제'로 주말마다 북항은 찬 바닷바람을 외투로 막아내는 시민들과 오색찬란한 빛으로 가득했다. 2월은 '개항 160주년 기념의 달'이었다. 한 달 내내 여러 행사로 북항은 떠들썩했다. 특히 1000명이 넘는 세계인이 참가한 26일의 개항 기념식은 하이라이트였다. 3월 둘째 주말에는 가지각색의 돛을 단 100여 척의 범선이 북항 바다를 수놓았다. 범선들이 정박했던 자성대, 대풍포, 용호만의 선창들은 마치 근대기의 무역항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4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부산해양음악당'으로 변신한 자성대 사일로에서 베를린필하모닉 초청연주회가 개최되었다. 2026년 개항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리모델링된 부산해양음악당은 이제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엘베 필하모니 콘서트홀'과 함께 21세기 최고의 음악당으로 자리 잡았다.

5월에는 자성대 창고 두 동을 리모델링한 '부산레고하우스'에서 세계 어린이 레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를 계기로 부산레고하우스에서는 매달 레고아카데미스쿨을 개최하여 전국 어린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6월에는 옛 1부두에 조성된 '6·25전쟁 역사광장'에서 유엔 참전을 기념하는 'Sixteen Memorial' 행사가 있었다. 올해는 '에티오피아 해'로서 에티오피아 대통령이 초대되었고 300여 명의 유엔 인사가 초청되었다. 이와 함께 '피란수도'의 세계유산 등재 12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도 개최되었다.

7월에는 '나는 승리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길 수 없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하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하는 '스페셜올림픽 하계대회'가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수영 종목이 센트럴베이의 수로에 조성된 야외수영장에서 열려 그 의미를 더했다. 8월에는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에서 매주말 밤 폭죽이 터졌다. 북항의 수변 일대는 국내외에서 몰려든 캠핑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9월에는 월남파병(1964년 9월~1973년 3월) 60주년을 기념하며 옛 3부두 터에 조성한 '파병광장'에서 5000명 순국용사에 대한 추모행사가 있었다. 제4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10월에는 수변공원 곳곳에서의 '돗자리영화관'과 연안크루즈터미널에서 해운대와 자갈치를 연결하는 '무비크루즈'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11월에는 꼭 10년 만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부산오션베이스볼파크'에서 개최되었다. 야구 열기로 북항은 들썩거렸고, 홈런볼을 줍기 위해 잠자리채로 무장한 보트들로 자성대 바다는 장관을 이루었다. 지난 12월 1일에는 북항과 마주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터에서 높이가 무려 50미터가 넘는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있었다. 산복도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 트리가 세워진 영도조선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로서 부산시의 적극적인 보존 의지로 지켜진 곳이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런 일들이 북항에서 365일 계속될 수 있다면 부산은 어떻게 될까. 부산을 찾는 유동인구는 족히 연 3000만 명은 넘을 것이고, 부산은 IT와 역사문화, MICE와 축제, 스마트시티와 창조상업으로 무장한 신산업의 보고이자 미래형 산업도시로 발전할 것이다. 20년 뒤 북항은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하고, 우리는 무조건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20년 뒤의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 지금 우린 무엇을 검토하고 대응해야 할까. 당장 우리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도전과 투자를 끌어올 수 있는 혁신적인 발상을 하고 있는지 또 이를 위해 어떤 희생과 개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 5만 달러를 넘어설 대한민국의 미래인들이 만족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진정성과 비전을 담은 북항을 준비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짚어보고 이를 찾고 또 추구해야 한다.

2036년의 북항! 많은 일이 준비되어야겠지만, 초집중해야 할 세 가지만 제안해 본다. 첫째는 '국제성을 갖춘 앵커기능을 보유하는 일'이다. 물류, 수산업, 금융, 관광컨벤션 분야의 '글로벌 기업'과 이를 융합·지원하는 '글로벌 대학' 유치는 필수다.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앵커기능 유치는 북항이 경쟁해야 할 세계의 워터프런트들 모두가 갖추고 있는 기본의 기본사항이다. 앵커기능! 찾고 또 찾아야 한다. 둘째는 '북항이 대한민국 최고의 항구라는 증거를 확실히 지키는 일'이다. 항구 역사가 시작된 1, 2부두와 대한민국 컨테이너 물류 역사의 산증인인 자성대부두가 핵심이다. '글로벌 명성은 새것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다'는 명제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정립된 지 오래다. 항구의 옛 가치들과 새로운 기능들의 접목 수준이 북항 성공의 핵심 관건인 것이다. 배들이 닿던 안벽, 선창과 배를 연결하는 계선주들(1부두에 우리나라 유일의 계선주가 있다), 반세기 역사의 조명타워들, 자성대부두의 사일로 그리고 크레인과 창고들, 북항을 오갔던 수많은 사람 이야기와 기념적인 사건들 등. 특히 1, 2부두는 대한민국 물류사의 뿌리이자 6·25전쟁의 국면을 전환케 한 보은의 장소다. 이대로 가만히 시간이 지난다면 1부두 앞에서 130여 년을 지탱해 온 부산세관의 역사도 사라지고 만다. 거미줄 같은 해운관련 지역경제의 산업생태계가 모두 파괴될 수밖에 없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셋째는 '혁신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의 도입'이다. 영도와 원도심 그리고 문현금융단지와 서면을 북항과 엮는 통합형 신교통의 필요성을 말한다. 육지뿐 아니라 바다의 대중교통, 즉 크루즈 대중화도 매우 중요하다. 북항을 중심으로 해운대에서 낙동강에 이르는 섬세한 크루즈 시스템의 확보는 북항 성공의 필수조건이 될 것이다.

북항은 재개발보다 재창조되어야 하는 곳이다. 지금보다 더 어렵게, 또 좀 힘들게 가면 어떤가. 그것이 2036년 즈음에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 북항이 대한민국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다면 그리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