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청와대와 정부가 밀양으로 벌써 못 박아놓고 있다는데 정말이냐? 새누리당이 그러고도 부산에서 표를 얻을 수 있겠느냐? 그래도 정치적 고려 없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가덕도로 오지 않겠느냐?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 말들이다. 그러나 답답한 건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신공항을 세우자고 처음 깃발을 든 곳도, 129명이 숨진 김해 돗대산 참사를 눈앞에서 보고 '24시간 운항 가능한 안전한 공항'이란 신공항 콘셉트를 만든 곳도 부산이었다. 그리고 부산은 국내 최대 항만을 끼고 있는 데다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기·종점에 있어 항만, 철도, 육로에다 신공항을 연결할 경우 동북아 물류 거점 도시로서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있다. 신공항 건설로 부산 혼자만 잘 먹고 잘살자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재도약시킬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 경북(TK) 권력이 장악한 정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격으로, 숟가락 얹어 주며 밥 한술 뜨라고 했더니 이젠 밥상을 통째로 덮칠 기세다. 그렇게도 공항이 필요하고 좋으면 대구 안에 새로 지으면 될 일을 산으로 둘러싸인 밀양은 또 무언가. 소음에다 도시발전을 가로막는 K2 공항(대구 군사공항)은 시외로 내보내고 싶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면 불편하다는 심사 아닌가. 가수 나미의 '빙글빙글' 가사처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이 대구로 봐선 밀양인 셈이다. 결코, 밀양이 좋거나 예뻐서 그런 게 아니다. 돗대산, 괌 참사 등을 겪고도 산봉우리가 즐비한 곳에 공항을 짓자고 하는 건 강심장이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안전이나 생명보다 지역이익을 우선시한 냉혈한이어서인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경남도를 비롯한 나머지 지자체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옥토를 간직한 밀양에 소음 덩어리인 공항을 유치하자는 건 양잿물도 공짜라면 먹는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전국 공항 주변치고 정상적인 주민생활이 이뤄지는 곳이 있던가. 버스정류장과 역 주변은 음식점 술집 등 상가라도 형성되지만, 공항 근방은 그야말로 철조망을 두른 허허벌판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귀를 찢는 소음만 울릴 뿐이다. 소와 돼지가 유산하고 벼와 과수 농사를 망쳤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 곳이 공항 주변이다.
밀양이 대구에서 58㎞, 부산에서 35㎞, 울산에서 55㎞ 등 중간지점에 있어 적지라는 주장도 초등생 수준의 얘기다. 전남 무안은 광주와 목포, 강원도 양양은 속초와 강릉 중간에 건설됐지만, 승객이 없어 실패한 공항의 대명사가 됐다. 배후도시와의 연계 없이는 유령공항이 되기에 십상이라는 산 증거다. 현재 김해공항은 승객이 넘쳐 시장바닥처럼 된 지 오래건만 대구공항은 적자다. 신공항이 건설돼도 주요 승객은 부산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 갈 때 필요하다지만 대구역이나 밀양역, 울산역에서 KTX를 타는 게 외려 편리하고 빠르다. 부산시민들이 서울 빨리 가려고 신공항 건설하자는 게 아니다. 분명히 해두자. 신공항은 승객과 물류가 흐르는 국제선 위주의 관문공항이다. 신공항은 접근성 위주로 도시 한가운데 설치하는 시외버스터미널이 결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인 2012년 11월 "부산시민들이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발언으로 그해 9월 45.5%에 머물던 부산에서의 지지율은 실제 투표에서 59.8% 득표로 나타났다. '부산시민이 바라는 신공항'이 가덕 신공항이란 걸 시민들은 철석같이 믿고 확 밀어준 것이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박 대통령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그런데 서병수 부산시장조차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정치적, 정무적으로 신공항이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 건 심상찮다.
수없이 되짚어 봐도 합리적으로 신공항 입지가 결정된다면 가덕도가 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정 장애물(산봉우리)을 용역 평가항목에서 슬그머니 뺀 것에서 보듯 합리보다는 비합리, 경제성보다는 정치적(정무적) 판단으로 만에 하나 밀양으로 결정된다면 그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TK의, TK에 의한, TK를 위한 밀양의 선택, 그것이다. 여기에는 퇴임 이후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TK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판 짜기가 고려됐을 것이다. 특히 진박을 중심으로 한 '보이지 않는 손'의 정치적 노림수가 깔렸을 게 틀림없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신공항이야말로 만사다. 신공항 입지에 따라 대한민국이 살 수도 있고, 부산이 죽을 수도 있다. 정치판이 지각변동할 수도 있고, 다음 대선이 뒤집힐 수도 있다. 과연 이달 말께 '보이지 않는 손'이 마각(馬脚)을 드러낼까. 민란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의 부산 민심을 거스르면서 말이다.
논설실장 so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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