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애초에 무리한 주장이다. 판을 뒤엎는 거대한 개혁이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기득권 세력들이 받아들이기엔 힘겹기 때문이다. 설혹 시작한다 해도 끝을 맺기 어렵다. 그 과정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한데도 그걸 고집하는 건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한계에 도달하면 근본 틀을 바꿀 수밖에 없다. 비록 현실과 괴리되고 숱한 고통을 동반할지라도.

뭔 소린가 하면, 연방제 이야기다. 갑작스럽긴 한데, 막다른 골목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지금, 대한민국엔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게임의 룰을 바꾸고 근본 틀을 새로 만들지 않으면 퇴로가 없다.

신공항 입지 하나 결정하는 데 13년이 걸렸다. 건설까지 감안하면 20년이다. 가덕도냐, 밀양이냐 후보지를 곧 발표한다는데 부산은 팥죽 끓는 형상이다. 김해공항을 확장 이전한다는 게 여기까지 왔다. 정권은 부산과 대구 경북 경남 울산을 편 갈라 싸움을 붙였다. 국민을 분열시킨 얕은 수다. 입지가 어디로 결정되든 또 한 번 내홍은 불가피하다.

사안의 핵심은 자기 결정권이다. 인간이 존엄한 건 자기 자신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데 있다. 민주주의의 제1 원리는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이라지 않던가. '스스로'라는 자기 결정권이 곧 민주주의의 핵인 셈이다.

지역이라고 다르지 않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게 자치의 작동 원리다. 안전하고, 소음피해가 적으며, 24시간 가동할 공항 하나 짓는 걸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자치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부패한 소수자와 무능한 다수자에 의한 결정이다. 4개 시·도의 숫자 논리에 준거해 억지로 끼워 맞춘 용역이라? 그게 정당하겠는가.

세상이 온통 뿌옇다. 미세먼지가 원인이지만 우왕좌왕하는 정부가 시야를 더욱 흐린다. 경유차의 서울 진입 금지라? 취소되긴 했지만 한숨만 나온다. 경유값 인상, 직화구이집 규제라고? 담뱃세 왕창 올린 것과 판박이 행태다. 유승민 복당을 둘러싼 여권의 좁쌀 대응은 숨이 콱 막힌다. 친박의 전횡이 총선 참패의 원인이었다. 그걸 벌써 잊었는지 이번엔 또 복당 갈등이다. 쿠데타니 뭐니 하며 복당조차 막는 그 옹졸함이 답답하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지역은 중앙에 종속되고, 당은 청와대에 예속되고…. 도대체 우리 사회 어느 분야 하나 독립성을 가진 게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더니 비정상만 잔뜩 부풀려 놓았다. 하기야 폐단을 쌓는 것은 변화의 단초가 되니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권력의 집중과 독점이 문제의 근간이다. 대통령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 '87년 체제'의 헌법은 부작용만 낳았다. 해서, 국회의장을 필두로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뤘다. 청와대는 또 반대라는데,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30년 묵은 체제는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

변화는 권력의 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 지역과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 결정권이 강화돼야 완결될 수 있다. 이를 실현하는 방식이 연방제 개헌이다. 물론 전거가 있다. 2008년 10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강소국 연방제 개헌을 주장했다. 서울 중심의 국가로는 힘과 에너지를 결집시키지 못해 지방이 무력화된다는 이유. 국가 경쟁력 1, 2위인 싱가포르, 핀란드처럼 인구 500만~1000만 정도로 묶으면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북유럽의 소국들이나 스위스, 싱가포르가 번영을 구가하는 건 연방제의 효용성을 담보한다. 문재인 전 대표도 연방제 수준의 지역 분권을 약속한 바 있다.

지역·계층·세대 간 불평등의 근간은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에 있다. 이를 깨는 특효약이 연방제다. 개인의 자유 신장에도 효력이 있다. 혼란을 우려하는 이도 있지만 권력 집중으로 인한 위험을 분산하고 통일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38개 주로 이뤄진 독일의 연방제가 정치적 독립과 통일 후의 갈등 해결에 큰 도움이 된 것이 그 증좌다.

연방제를 택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넓은 영토나 문화적 이질성이 그것이다. 그러니 문화권에 따라 연방을 나누면 지역이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해방 후 70여년, 중앙집권적 단일 지도체제는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경제성장, 산업구조, 인구문제, 보육과 교육, 복지…. 어느 것 하나 해결 못하는 게 지금까지의 정부였다.

중앙집중은 곧 위험의 집중이다. 공기업, 금융, 기업의 부실은 중앙 집중의 폐해 중 하나다. 대우중공업이 그 좋은 예다. 권력의 지방 분산은 곧 위험의 분산인 동시에 경쟁력 강화로 통하는 길이다. 신공항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그 기회 비용은 연방제라면 치르지 않아도 될 일이다. 각계각층이 무력감을 벗고 의무감과 소명감을 갖게 하는 데도 효용성이 높다. 잘 살고, 못 살고를 스스로 결정해 자립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것, 그게 연방제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