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코 반대한다. 이 지긋지긋한 더위 말이다. 옷을 있는 대로 벗고 가만히 앉았어도 땀이 주르르 흐른다. 몸에서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 삼투압 작용을 반대한다. 사방의 벽이 열기로 달아오르고 열에 갇힌 공기는 숨쉬기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나른한 오후, 눈꺼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그 무력감을 단연코 반대한다.

해마다 맞는 더위지만 올해엔 낯선 얼굴이다. 경북 영천이 39.6도로 74년 만의 최고 기온을 기록하고 경산에선 비공식이긴 하나 40도를 넘었단다. 기온과 습도로 체감하는 열지수는 입이 떡 벌어지는 53도까지 치솟았다. 살기 좋은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의 낮 최고 기온이 37.3도, 아침 최저 기온이 28.3도로 기상관측 이래 112년 만의 최고 기록. 그것도 13, 14, 15일 사흘 연속 기록 경신이다.

내리쬐는 태양이야 어쩌겠냐만은 열에 갇힌 도시는 단연코 거부한다. 부산은 한때 도시 열섬에서 벗어났다고 좋아라 했다. 대대적인 도심 나무심기, 소공원 조성으로 깨나 효험을 봤다. 그랬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올해엔 열섬이 오히려 확산됐단다. 한때 나아졌던 도시의 열섬이 다시 주목받는 건 썩 반갑지가 않다.

올여름, 부산은 열에 갇힌 도시를 실감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일이 터지게 돼 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동안 부산은 무작정 개발 일변도였다. 온 천지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였다. 스모그, 미세먼지, 에어컨, 열을 품은 건물들…. 그 모두가 열기를 뿜어대니 열이 도시에 갇힐 수밖에.

결국 물, 공기, 나무다. 물부터 보자. 동·서부산 개발은 농지를 잠식했다. 논은 날씨에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 여름철 무논은 대기를 식히는 에어컨디셔너다. 태양열을 흡수하고 수증기를 증발시켜 기온을 떨어뜨린다. 또 지하수량을 공급해 대지를 식힌다. 서부산 개발로 김해평야가 다 사라지면 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부산의 지하수 고갈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도시철도 건설 등으로 지하수가 대량 유출된 것이다. 강서, 금정, 기장, 영도 등 8개 구 외 다른 구는 지하수 사용량과 유출량이 이용 가능량을 초과했다. 연제, 동래, 수영 등은 배가 넘었다. 고층 빌딩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도 지하수를 고갈시킨다. 지하수가 부족하면 지표수를 빨아들여 계곡과 하천의 물이 마른다. 당연히 폭염에 취약해진다. 도심에 소공원을 조성하고 나무도 어지간히 심었지만 개발 속도를 따라잡진 못한다. 나무가 줄면 기온이 급상승하는 건 정한 이치다.

우리나라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126조 원. 국민 1인당 연 249만 원으로 GDP의 8.5% 규모다. 산림과학원이 집계한 내용인데, 1987년에 비해 2014년도에 정확하게 7배로 가치가 증가했다. 12개의 항목 중 산소 생산과 온실가스 흡수, 대기질 개선, 열섬 완화 등 공기와 관련한 기여도가 제일 크다. 그 다음이 수원 함양과 토사유출 방지 기능.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15평형 에어컨 3대의 기온 냉각 효과가 있다니 말 다한 것이다.

이번 더위는 하늘 탓만은 아닐 것이다. 노력하면 극복 가능하기 때문이다. 분지 지형인 대구시는 대표적인 열섬 도시였다. 한여름, 동성로의 아스팔트를 밟으면 신발에 콜타르가 쩍쩍 달라붙었다. 그러던 것이 전국 최고기온에서 대구가 사라졌다. 도심에 나무를 심고 옥상 녹화를 강화해 기온을 3도나 떨어뜨렸다고 한다. 도로 중앙분리대에 살수 노즐을 설치해 물을 뿌리는 클린로드도 한몫을 했다.

세계의 도시들은 더위의 습격에 신음하고 있다. 1995년 시카고에서는 닷새간 더위에 700명이 사망했다. 고층 빌딩 사이에 공기가 갇혀 가열됐기 때문이다. 1952년 런던에선 스모그로 3주간 4000명, 총 1만2000명이 숨졌다. 2010년 러시아 5만6000명, 2003년 프랑스 등 7만 명이 44~45도의 폭염으로 희생됐다.

공기와 물을 활용하려는 세계 도시의 노력도 잇따르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도시의 바람길을 뚫는 데 성공했다. 우선 계곡과 언덕의 건물을 헐고 호수공원을 조성했다. 숲 근처의 건물은 바람길과 나란히 지어 신선한 공기가 도심으로 통하게 했다. 대성공이었다. 빗물의 활용은 보편화돼 있다. 독일은 빗물 이용 장치가 수십 만 개에 달하며 베를린은 빗물 이용률이 58%나 된단다. 도쿄는 세계 최대의 지하 빗물 저장고를 갖고 있다. 호주는 빗물을 지하수층에 주입해 수원으로 사용한다.

사람이 활동하기에 가장 쾌적한 온도는 20도. 이때의 작업 능률은 100%다. 30도가 되면 63%로 뚝 떨어지고, 40도 이상이면 생리기능이 파괴돼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지금처럼 여름철 폭염이 심해진다면 부산은 어찌 될까. 도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면 비극은 기정사실이다. 숲길, 바람길, 물길을 열어야 도시가 숨을 쉰다. 살길을 여는 방법? 그걸 몰라서가 아니다.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